호남지방의 지명에 가사를 붙여놓은 단가
호남가(湖南歌)는 서술자가 제주도에서 호남지방으로 건너와 각 고을을 편답(遍踏)하는 방식으로 시작되는데 각 고을의 풍물과 자연의 경치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태인(泰仁)하신 우리 성군(聖君) 예악(禮樂)을 장흥(長興)하니”와 같이 지명의 의미를 풀어 호남의 각 지역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 부분은 “크게 인자(仁慈)하신 우리 성군 예악을 크게 흥하게 하시니”로 해석된다. 이처럼 호남가는 지명의 의미를 연결하는 일종의 언어유희를 통해 함평(咸平), 광주(光州), 제주(濟州), 해남(海南), 흥양(興陽), 보성(寶城), 고산(高山), 영암(靈巖), 태인(泰仁), 장흥(長興), 순천(順天), 진안(鎭安), 고창(高敞), 나주(羅州), 운봉(雲峯), 익산(益山), 담양(潭陽), 만경(萬頃), 용담(龍潭), 용안(容安), 능주(綾州), 금산(錦山), 남원(南原), 무장(茂長), 임실(任實), 옥과(玉果), 화순(和順), 함열(咸悅), 무주(茂朱), 영광(靈光), 창평(昌平), 무안(務安), 낙안(樂安), 동복(同福), 강진(康津), 지도(珍島), 금구(金溝), 김제(金堤), 옥구(沃溝), 임피(臨陂), 정읍(井邑), 순창(淳昌), 고부(古阜), 광양(光陽), 곡성(谷城), 구례(求禮), 흥덕(興德), 부안(扶安), 법성(法聖), 전주(全州), 장성(長城), 장수(長水), 여산(礪山), 남평(南平) 등 호남 지방의 54개 지명을 차례로 나열하고 있다. 호남가와 같이 지명을 가사로 두고 그 기원을 살피는 지명 가사는 지리 학습과 더불어 애향심 고취를 목적으로 창작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 후기에 각 지역에서 지명 가사가 다수 창작되어 폭넓게 유통되었고, 그 가운데 호남가가 가장 폭넓게 전파되었다.
호남가는 『신재효 판소리 사설집』에 처음 전하는 것으로 보아 신재효(申在孝, 1812~1884)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남가의 가사에 작중 화자가 고창성에 홀로 앉아 나주 풍경을 관망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부분은 다분히 신재효 자신을 의식한 서술로 판단된다. 『신재효 판소리 사설집』에 그 가사가 남아있으며, 일제강점기 때 유성기음반으로 발매되었고, 현재까지도 단가로 불리고 있다. 특히 임방울(林芳蔚, 1904~1961)이 불러 유명해진 단가이다. 이 외에도 정정렬(丁貞烈, 1876~1938), 하농주(河弄珠), 김금암(金錦巖) 등이 호남가를 음반으로 취입하였다. 또한, 가야금병창으로도 불렀다. 이 단가는 이후 임방울의 제자 신평일(申平日, 1921~?)을 비롯하여 신유경(申唯京), 박송희(朴松熙, 1927~2017), 오정숙(吳貞淑, 1935~2008), 성창순(成昌順, 1934~2017) 등 많은 명창들에 의해 전승이 되었다. 이들이 부른 호남가 사설은 모두 『신재효 판소리 사설집』에 수록된 호남가와 같은 것이다. 호남가는 신재효의 단가 이외에도 여러 이본이 존재한다. 최승범(崔勝範)은 신재효본을 포함하여 여덟 종의 호남가를 소개하고 이들은 정익섭(丁益燮)본을 제외하고는 대동소이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외에 이혜화가 소개한 『해동유요(海東遺謠)』 소재 호남가, 강한영(姜漢永)이 소개한 천리대본 호남가 두 편, 『악부(樂府)』(고려대학교 소장) 소재 호남가 등과 함께 『고가요기초(古歌謠記抄)』(국립중앙도서관 소장)에 수록된 호남가 그리고 『정선조선가요집(精選朝鮮歌謠集)』(1931)의 단가 항목에 수록된 호남가, 단국대학교 소장 호남가 등이 확인된다.
○ 용도 단가(短歌)란 판소리를 하기 전에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판소리에 비해 비교적 짧은 소리를 의미한다. 판소리와 상관없는 노랫말의 단가의 경우 보통 5분 내외의 길이로 짜여져 있으나 판소리에서 파생되어 단가로 불리는 경우에는 10분 내외로 길어지기도 한다. 노랫말 내용은 대부분 산천풍월(山川風月)이나 고사(故事)를 읊은 것이다. 단가를 연창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단가를 통해 자신의 발성 등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준비시간이 된다. 단가를 부르면서 그날의 목 상태가 어떤지 판단할 수 있으며, 그런 판단을 통해 앞으로 진행될 판소리 본 공연의 본청(기본음)이나 소리의 발성 등을 감안하여 연행할 수 있게 된다. 고수의 입장에서 단가는 연창자의 몸 상태와 음악적 표현에 따른 호흡을 감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소리꾼 개인마다 장단 운용 호흡이 다양하고, 고수 역시 한배(속도)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고수는 소리꾼과의 호흡을 잘 맞추어야 하는데 단가를 부름으로써 소리꾼과 고수의 호흡을 맞춰나가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또한 관객의 입장에서는 단가를 통해 연창자의 소리 실력과 고수와의 조화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단가는 소리판에서 매우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지니고 있다. ○ 음악적 특징 단가는 대체적으로 중모리장단을 사용하며 곡조의 경우 우조길(sol음계)과 평조길(la음계)로 짜여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20세기 중후반에 불린 단가는 때에 따라서 우조의 단가를 부분적으로 계면조로 변화시켜 음악적 기교를 보여주기도 했는데 특히 임방울은 단가를 계면조로 많이 불렀다.
함평(咸平)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랴 하고 제주 어선 빌려 타고 해남으로 건네갈 적 흥양(興陽)의 돋은 해는 보성(寶城)으 비쳐 있고 고산(高山)의 아침 안개 영암(靈巖)을 둘러 있네 태인(泰仁) 허신 우리 성군 예악(禮樂)을 장흥(長興)허니 삼태육경(三台六卿)으 순천심(順天心이)요 방백수령(方伯守令) 진안군(鎭安郡)이라 고창성(高敞城)으 높이 앉어 나주(羅州) 풍경(風景) 바래보니 만장운봉(萬丈雲峯)이 높이 솟아 층층(層層)한 익산(益山)이요 백리 담양(潭陽) 흐르난 물은 구부구부 만경(萬頃)인데 용담(龍潭)에 맑은 물은 이 아니 용안처(龍安處)며 능주(綾州)으 붉은 꽃은 골골마다 금산(錦山)이네 남원(南原)에 봄이 들어 각색 화초 무장(茂長)허니 나무나무 임실(任實)이요 가지가지 옥과(玉果)로구나 풍속은 화순(和順)이요 인심은 함열(咸悅)인디 기초(奇草)는 무주허고 서해는 영광(靈光)이라 창평(昌平)한 좋은 세상 무안(務安)을 일 삼으니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낙안(樂安)이요 부자형제(父子兄弟) 동복(同福)이로구나 강진(康津)의 상고선(商賈船)은 진도로 건너갈 적 금구(金溝)에 금을 일어 쌓인게 김제(金堤)로다 농사허는 옥구(沃溝) 백성 임피상군(臨陂裳郡)에 둘러있고 정읍(井邑)에 정전법(井田法)은 납세(納稅) 인심 순창(淳昌)허니 고부청청(古阜靑靑) 양류색(楊柳色)은 광양춘색(光陽春色)이 팔도에 왔네 곡성(谷城)에 묻힌 선비 구례(求禮)도 허려니와 흥덕(興德) 허기를 일 삼으니 부안제가(扶安齊家) 이 야니냐 우리 호남의 굳은 법성(法聖) 전주(全州) 백성을 거나리고 장성을 널리 쌓고 장수(長水)로만 돌아들어 여산석(礪山石)에다가 칼을 갈아 남평루(南平樓)에다 꽂았으니 조선에는 삼남이 으뜸이라. 거드렁 거리고 지내보세.
임방울 창, 고수 한일섭 정양·최동현·임명진, 『판소리 단가』, 민속원, 2003.
단가 <호남가>는 신재효가 당시에 널리 유통되던 지명 가사 <호남가> 가사를 저본으로 재창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단가 <호남가>는 지명의 의미를 연결하여 지명을 열거하는 서술 방식은 가사와 같다. 가사 계열은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내용으로 지명을 풀이하며 호남의 각 고을을 편답한 후 제주도로 건너가서 한라산 등을 둘러보고, 한양가풍으로 끝을 맺는다. 반면에 단가 <호남가>는 제주도 부분은 생략하였고 서술자가 제주도에서 호남지방으로 건너와 호남의 각 고을을 편답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결사 역시 가사 계열이 송축적 분위기로 끝을 맺는 반면 “엇ᄒᆞᆫ 방역객이 놀고 가긔를 질거ᄒᆞᆯ가.”로 바꾸어 유람의 흥취를 부각시켰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단가 <호남가>의 출현 이후에 <호남가>의 후대적 전승은 단가 계열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가사 계열의 <호남가>는 『악부』에 수록된 것을 제외하고는 그 전승이 뚜렷하지 않다. 단가 <호남가>가 가창 문화권에서 널리 가창 되면서 기존의 가사 전승을 현저히 약화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호남가>는 가야금병창으로도 많이 불리는데 박귀희(朴貴姬, 1921~1993)의 <호남가>는 “농사허는 옥구(沃溝) 백성 임피상군(臨陂裳郡)에 둘러있고”에서 “거드렁 거리고 놀아보세”로 끝이 나면서 “정읍(井邑)에 정전법(井田法)은 납세(納稅) 인심 순창(淳昌)허니 고부청청(古阜靑靑) 양류색(楊柳色)은 광양춘색(光陽春色)이 팔도에 왔네 곡성(谷城)에 묻힌 선비 구례(求禮)도 허려니와 흥덕(興德) 허기를 일 삼으니 부안제가(扶安齊家) 이 아니냐 우리 호남의 굳은 법성(法聖) 전주(全州) 백성을 거나리고 장성을 널리 쌓고 장수(長水)로만 돌아들어 여산석(礪山石)에다가 칼을 갈아 남평루(南平樓)에다 꽂았으니”의 가사가 생략되었다. 하지만 선율의 경우 임방울의 <호남가>와 유사하게 진행된다. 정달영(鄭達榮, 1922~1997)의 제자이자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및 병창 문화재인 강정렬의 <호남가>는 임방울의 <호남가>와 가사 및 선율이 매우 유사하게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 부록 1) 지명지도
○ 참고문헌 강정렬, 『강정렬의 가야금병창』, 전라북도립국악원, 2008. 박귀희, 『重要無形文化財 23號 香史 朴貴姬 伽倻琴倂唱曲集(중요무형문화재 23호 향사, 박귀희 가야금병창곡집)』, 세광음악출판사, 1979. 이승철 외, 『한국민속문학사전』, 국립민속박물관, 2012. 정양·최동현·임명진, 『판소리 단가』, 민속원, 2003. 채수정, 『판소리의 첫 호흡, 단가를 부르다』, 채륜, 2018. ○ 참고음원 「판소리 명창 임방울(林芳蔚) 전집」, 킹레코드사, 1990. → 679.4/신595임=3 「단가 1」, 수도미디어, 2001. 「박귀희 가야금병창」, 국립국악원·악당이반, 2011. → 679.314/국366박 「강정렬의 국악세계」, 신나라레코드,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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