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靈山), 허두가(虛頭歌), 초두가(初頭歌)
소리꾼이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짧은 노래
단가는 긴 노래인 장가(長歌)에 비해 짧은 노래라는 의미이다. 시조 역시 단가로 불리웠지만, 판소리에서 단가를 부르는 공연 형식이 자리 잡으면서 조선 후기의 단가는 판소리에 앞서 목을 풀거나 호흡을 조정하는 목적으로 부르게 되었다. 단가는 문학적으로는 가사의 양식을 가지면서 음악적으로는 중모리장단에 우조나 평조로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다. 내용은 주로 자연에 대한 감상이나 중국의 사적과 고사, 인생무상이나 탄로 등이 많지만 판소리의 한 대목을 떼어서 부르기도 한다. 단가는 판소리의 시작을 알리는 기능을 하였지만, 후대에는 독립적으로 부르기도 하였고, 가야금병창으로도 불렀다.
○ 단가의 유래 및 역사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단가를 하는 데에는 여러 목적이 있다. 우선 단가는 소리꾼의 입장에서는 판소리를 부르기 앞서 목을 풀어, 다음의 본사가인 판소리를 잘하기 위함이다. 고수의 입장에서는 기본 장단인 중모리로 반주를 하며 소리꾼과 빠르기나 호흡 등을 맞추기 위함이다. 청중의 입장에서는 소리를 듣기 위한 준비시간으로, 본격적인 소리로 들어가기 전 감정을 끌어올리고 소리의 상태를 맛보기 위함이다.
단가는 ‘영산’이나 ‘허두가’로도 불렸는데, ‘영산(靈山)’이라는 용어는 신광수(申光洙, 1712~1775)의 「제원창선(題遠昌扇)」(1750), 신위(申緯, 1769~1845)의 「관극절구(觀劇絶句)」(1826), 유만공(柳晩恭, 1793~1869)의 「세시풍요(歲時風謠)」(1843),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영산선성(靈山先聲)」 등에서 볼 수 있다. 송만재(宋晩載, 1788~1851)의 「관우희(觀優戱)」(1843)에는 영산에 관한 한시 8수가 실려있다. 영산이라는 명칭은 19세기 후반까지 단가를 지칭하는 보편적인 용어였다. 하지만 이때의 영산은 정확히 어떻게 불렸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19세기에 단가로 불린 작품들로는 송만재의 「관우희」에 보이는 〈진국명산〉, 〈관동팔경〉, 이유원의 「영산선성」 중 〈역려가(혹은 역대가)〉, 〈소상팔경〉, 〈새타령〉, 『조선창극사』에 정춘풍(鄭春風)의 더늠으로 알려진 〈소상팔경〉, 송흥록(宋興祿)의 〈천봉만학가〉 등이 있다. 정현석(鄭顯奭, 1817~1899)의 『교방가요(敎坊歌謠)』에는 〈환산별곡〉이 단가로 수록되어있다. 한편 신재효는 사설로 ‘허두가’라는 제목하에 13편의 단가를 남겨 놓았다. 〈대관강산〉, 〈역대가〉, 〈궁장가〉, 〈역려가〉, 〈소상팔경〉, 〈고고천변〉, 〈새타령〉, 〈달거리〉, 〈금화사가〉, 〈숭유가〉, 〈고금가〉, 〈효도가〉, 〈북정가〉가 그것이다. 이를 통해 19세기의 단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역대 명창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단가가 있었다. 박기홍(朴基洪)의 〈대관강산〉, 송만갑(宋萬甲, 1865~1939)의 〈진국명산〉, 이동백(李東伯, 1866~1949)의 〈백발가〉, 김창룡(金昌龍, 1872~1943)의 〈장부한〉, 임방울(林芳蔚, 1904~1961)의 〈쑥대머리〉, 〈호남가〉 등이 유명하다. 현대 명창들 중 조상현(趙相賢, 1939~)의 〈사철가〉, 박송희(朴松熙, 1927~2017)의 〈인생백년〉 등은 근세에 새로이 만들어진 것이다.
○ 단가의 내용과 주제
단가의 사설은 일차적으로 정서의 보편화를 유도한다. 죽음이나 인생, 늙음 등이 모든 인간에게 해당된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확인시켜 줌으로써 ‘함께하기’라는 정서의 공유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삶도 특별한 것이 없으니 즐기자는 인식은 무상감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풍류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미학이 다분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세계인데 비해 단가는 세계의 모든 것을 추상화시키면서 인생의 질곡을 털어버릴 것을 선언하고 있다. 낯익은 세계를 단가로 끌어들이면서 정서적 보편성을 추구하고, 이를 통해 화해와 서정의 세계를 구축했다. 음악적으로도 단가는 평, 우조에 중모리장단을 씀으로써 화평하고 점잖은 미학을 구현하고 있다. 세상사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관조하려는 의식, 보다 높은 곳에서 역사를 바라보려는 태도가 단가의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우아미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노래인 것이다. 이러한 점은 가사나 잡가와 변별된다고 할 수 있다.
단가의 주제는 인생무상이나, 탄로, 풍류, 효도, 송도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지만 어느 것도 현재의 삶을 즐기자는 내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즐기되 우아하게 즐기자는 것이다. 승지 구경을 가거나, 역대 인물의 사적을 늘어놓는 행위는 고상한 취향을 반영하기 좋은 것이며, 많은 부분이 한문투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이러한 인식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단가는 서두, 종결 부분의 정형구 사용, 낯익은 존재의 반복적 확인, 공식적 표현구, 갈래교섭과 상호 텍스트성을 통해 한 편의 사설을 구성했다. 그리고 이러한 작시 원리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단가의 주요 작품으로는 〈죽장망혜〉, 〈만고강산〉, 〈운담풍경〉, 〈편시춘〉, 〈호남가〉, 〈대관강산〉, 〈백발가〉, 〈사철가〉, 〈인생백년〉등이 있는데, 주로 자연 경관을 시간 순서에 따라 이동하며 나열하는 식이거나 인생무상과 세월의 덧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관용적 표현이 많이 쓰이는 것도 특징인데 서두에는 “어화세상 벗님네야~”, “아서라 세상사 쓸 데 없다”, “인생 백년~” 등 호격 형식이거나 제목을 던져 놓는 등의 내두름을 관용적으로 쓴다. 마지막 부분에는 “~놀아보자”, “~지내보세”, “아니 놀고 무엇을 할거나”, “거드렁 거리고 놀아보세” 등의 공식적 표현을 쓴다.
○ 단가의 성격 단가는 기본적으로 시가문학의 한 갈래로 인식된다. 운율과 리듬을 통해 압축된 정서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가문학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단가의 사설은 조선 후기에 향유되던 다종의 시가 갈래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교섭갈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기존의 한시와 고사는 물론 시조와 가사, 잡가, 무가, 불교가요 등과 교섭하여 최대한 사설에 이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조선 후기의 가사나 잡가 등도 예외가 아니어서 서로 갈래간 활발한 혼효가 이루어졌다. 이뿐만이 아니라 단가 사이에서도 사설을 섞는 사례가 허다하고, 제목만 다를 뿐 같은 사설로 이루어진 단가도 있는 실정이다. 특히 단가의 사설에서 중심을 이루는 부분은 가사로 전승이 되던 것들인데, 이러한 성격으로 말미암아 단가를 가사 혹은 가사체로 분류하는 연구도 이어졌다. 단가를 사설 중심으로 보았을 때 4음보 연속체로 이루어진 가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쉽사리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가는 단가요, 가사는 가사이며 잡가는 잡가로 귀착된다. 그것은 노래문화라는 큰 틀 속에서 그들이 가창되던 문화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단가는 판소리를 염두에 두고서야 비로소 성립될 수 있는 노래라는 점에서 가사나 잡가와 그 기반을 달리한다. 따라서 단가를 논의할 때는 판소리와의 연관성 속에서 그 노래문화가 해명되어야 하며 그 연행 주체는 당연히 전문 판소리 연창자여야 한다. 단가의 복합적 문학성은 구비문학과 기록문학, 서정과 교술을 넘나들고 있음에서 확인된다. 단가는 유동성과 적층성, 현장성을 가지고 유통되었다는 점에서 구비문학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러나 기록된 가사의 사설에 의지하여 불리고, 창작된 단가가 기록으로 전하며, 한편으로는 단가가 가사의 사설로 고착되기도 하였으니 구비성과 기록성 양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한편 단가는 탄식이나 인생무상, 연정, 그리움 등의 주제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서정문학으로서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한문고사의 나열과 병치, 지적 현학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교술문학적 자질을 노정하고 있다. 이처럼 단가는 시가의 모든 문학적 자질을 포함하고 있다.
단가는 문학적으로는 기존의 시가 양식을 수용하면서 서경적이고 관조적인 세계관을 표현했고, 음악적으로는 판소리에 앞서 성음을 조정하고 소리판을 준비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단가는 우리 문학의 교섭과 전파를 활발히 하면서 만들어진 노래로, 점차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하면서 단독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가야금병창 등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평우조의 담담한 창법과 보통빠르기인 중모리 중심의 장단을 가지고 단가를 불러 판소리로 들어가기 위한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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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