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어둔〉, 〈행선전야〉, 〈부녀 간 영결〉 대목
《심청가(沈淸歌)》 중 심청이 떠나기 전날 주변을 정리하고 부친과 이별을 준비하는 소리 대목
“눈 어둔 백발 부친(白髮 父親)”이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진계면의 진양조 소리 대목이다. 이 대목은 심청과 선인, 심청과 심봉사와의 대화체 아니리와 창조가 길게 이어지며, 죽음을 눈앞에 둔 심청이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아버지의 개명(開明)에 대한 간절한 희구(希求)를 노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라북도 무장군 출생으로 팔십 여세까지 향수하였던 동편제의 명창 김창록(金昌祿)은 《심청가》 공전절후(空前絕後)하게 당시 독보였다. 《심청가》 중 심청이 공양미 삼백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 제수로 상고 선인에게 끌려가기 전 부녀간 영결하는 이 대목은 김창록의 더늠으로 알려져 있다.
○ 역사적 변천 과정 ‘강산제’는 박유전(朴裕全, 1835~1906)이 대원군 하야 후 강산리에 내려와 은거하면서 만든 것이다. 강산제는 서편제의 대가닥 속에 속하는 하위 바디로 동편제와 서편제의 장점을 선택, 취합하여 예술성을 높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산제는 오직 박유전-정재근-정응민-정권진으로 내려온 것만을 강산제 또는 보성소리라 하여 독립적으로 취급한다. 강산제를 창시한 사람은 박유전이라고 하나, 그 특성인 동편과 서편 소리를 절충한 맛은 정재근에 와서야 확실히 이루어졌다. 《서편제 심청가》가 붙임새와 시김새가 아주 정교하고 다채롭다면, 강산제의 것은 붙임새가 굵고 분명하다. 《강산제 심청가》는 정재근에게 전승된 후 정응민, 정권진 3대에 걸쳐 계승되었는데, 1970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정응민은 그의 아들 정권진 외에도 조상현, 성창순, 성우향 등에게 이 강산제 《보성소리 심청가》를 전수하였다. ○ 형식과 구성, 음악적 특징 이 대목은 심청과 심봉사의 대화체 아니리와 창조가 교차적으로 구성되어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 딸과의 이별 상황을 전혀 모르고 천연덕스러운 심봉사의 모습과 부친과의 이별에 마음 놓고 울지 못하는 심청의 모습이 아니리와 창조를 통해 음악적으로 대조적인 구도로 표현되고 있다. 이 대목은 부녀의 이별 상황에 따른 슬픈 정조에 맞게 진계면의 악조가 주를 이룬다.
이 대목의 아니리와 창조는 심청이 선인과 행선일을 약속하는 장면,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고, 진양조장단의 소리는 심청이 부친과 이별하기 전 주변을 정리하는 장면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아니리) 심청이 이말을 듣더니, 천재일시(千載一時)의 좋은 기회(機會)로구나. 이웃사람 알지 않게, 몸을 은신(隱身)하고, 선인(船人) 한사람을 청(請)하여 엿자오되, [(창조) “소녀는 당년 십오세(十五歲)온데, 부친(父親)을 위하여, 몸을 팔랴 하오니, 저를 사가심이 어떠하오.”] 선인(船人)들이 좋아라고, “어허 그 출천지(出天地) 대효(大孝)로고. 거 값은 얼마나 주오리까.” [(창조) “더도 덜도 말고 공양미(供養米) 삼백석(三百石)만, 내월(來月) 십오일(十五日) 내로, 몽은사(夢恩寺)로 올려 주오.”] “허, 거, 출천지(出天地) 대효(大孝)로고. 그러나 우리도, 내월(來月) 십오일(十五日)이 행선(行船)날이오니. 어찌하오리까.” [(창조) “중값 받고 팔린 몸이, 내 뜻대로 하오리까.] 글랑은 염려 마옵소서.” 선인들과 약속한 후, 심청이 아무리 생각하여도, 부친을 아니 속일 수 없는지라. “아버지”, “오냐.” “오늘 공양미 삼백석을 몽은사로 올리게 되었으니, 아무 염려 마옵소서.” 심봉사 깜짝 놀라. “야야, 거 어쩐, 말이냐.” “전일에 승상댁 부인께서 저를 수양딸로, 말씀하신걸, 분명 대답 못 했지요. 오늘 제가, 건너가 아버지 사정을 여쭈오니, 부인께서 공양미 삼백석을, 몽은사로 올리시고, 저를 수양딸로 데려간다 하옵디다.” “야야, 그일 참 잘되었다. 그래, 언제 가기로 하였느냐.” “내월(來月) 십오일(十五日)날 가기로 하였내다.” “그러면 나는 어쩌고?” “아버지도 모셔가기로 하였어요.” “그렇치야, 눈먼 놈을 내 혼자 둘 것이냐. 잘되었다. 야야, 그일 참 잘 되었다.” 부친(父親)의 맺힌 근심 위로(慰勞)하고, 행선일(行船日)을 기다릴제. (진양조/진계면) 눈 어둔 백발부친(白髮父親), 생존시(生存時)에 죽을 일을 생각하니, 정신(精神)이 막막(莫莫)하고, 흉중(胸中)이 답답하여, 하염없는 설음이, 간장(肝腸)에서 솟아난다. 부친(父親)의 사시의복(四時衣服), 빨래하여, 농안에 넣어 두고, 갓망건 다시 꾸며, 쓰기 쉽게 걸어놓고, 모친분묘(母親墳墓) 찾아가서, 분향사배(焚香四拜) 통곡(痛哭)을 한다. 아이고 어머니, 불효여식(不孝女息) 심청(沈淸)이는, 부친(父親) 눈을 띄우려고, 삼백석(三百石)에 몸이 팔려, 제수(祭需)로 가게 되니, 년년(年年)이 오는 기일(忌日), 뉘라서 받드리까. 분묘(墳墓)에 돋은 풀은, 뉘 손으로 벌초(伐草)하리. 사배(四拜) 하직(下直)하고, 집으로 돌아와, 부친(父親) 진지 올린 후(後)에, 밤 적적(寂寂) 삼경(三更)이 되니, 부친(父親)은 잠이 들어, 아무런 줄 모르는구나. 잠이 깰까 염려(念慮)되어, 크게 울진 못하고, 속으로만 느끼는데, 아이고 아버지, 날 볼 날이 몇 날이며, 날 볼 밤이 몇 밤이나 되오. 제가 철을 안 연후(然後)에 밥빌기를 놓았더니 만은, 내일(來日)부터는 동리(洞里) 걸인(乞人)이 또 될 것이니, 아버지를 어쩌고 갈꼬. 오늘밤 오경시(五更時)에, 함지(咸池)에 머무르고, 내일(來日)아침 돋은 해는, 부상(扶桑)에다 매달으면, 불쌍하신 우리 부친(父親), 일시라도 더 뵈련만은, 인력(人力)으로 어이 허리. 천지가 사정이 없어, 벌써 닭이 꼬꾜. 닭아, 닭아 닭아 우지마라. 반야진관(半夜秦關)의 맹상군(孟嘗君)이 아니로구나.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나죽기는 설잖으나, 의지(意志)없는 우리 부친(父親)을 어이 잊고 가잔 말이냐.
성창순 창 〈눈 어둔 백발 부친(白髮 父親)〉 김진영 외, 『심청전 전집』, 박이정, 1997.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1964) 판소리: 유네스코 인류구전무형유산걸작(2003)
《심청가》 중 눈 어둔 백발 부친 대목은 심청이 떠나기 전날 주변을 정리하고 부친과 이별을 준비하는 소리 대목이다. 이 대목은 사설의 내용과 상황상 애상적인 정서를 띠며 진계면의 선율적 특징이 주를 이룬다. 본격적인 소리가 시작되기 전 딸과의 이별 상황을 모르고 천연덕스러운 심봉사의 모습과 부친과의 이별에 마음 놓고 울지 못하는 심청의 모습이 아니리와 창조를 통해 음악적으로 대조적인 구도로 표현되고 있다.
김진영 외, 『심청전 전집』, 박이정, 1997. 김혜정, 『정권진 창 심청가』, 민속원, 2015. 정노식, 『조선창극사』, 조선일보사, 1940. 최혜진, 『판소리의 전승과 연행자』, 역락, 2003. 권하경, 「심청가 진계면조에 관한 연구 : <서편제>·<강산제>·<동초제>의 진양장단 대목을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김태희, 「성창순의 <심청가> 연구 : 소리 표현방식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0.
김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