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역에서 유래하여 중국을 통해 들어온 금속제 관악기이다. 긴 관을 여러 단으로 나누어 휴대하기 편하게 만들었으며, 지공 없이 하나의 음만을 낸다. 조선 시대 군영의 신호 악기로 정착하여 기존의 각(角)과 함께 사용되다가 점차 그 쓰임이 확대되었다. 현재는 <대취타>를 연주하는 데 사용된다.
나발의 어원은 '외치다'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라바(rava)’에서 온 것으로, 중국에서 '라바(喇叭)'로 음차되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조선왕조실록』에 1480년(성종 11) 명나라 사신이 나발수를 대동하여 연주를 선보이자 이를 배우게 했다는 기록이 있어, 조선 전기에 공식적으로 유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역사적 변천조선 전기에 도입된 나발은 점차 군영 악대의 중요 악기로 자리 잡았다. 조선 후기에는 국왕의 행차나 군대 행렬에 편성된 취고수(吹鼓手)나 내취(內吹) 악대에 나발수가 포함되었다. 이 모습은 김홍도의 <평양감사향연도>나 『원행을묘정리의궤』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이 시기 나발의 쓰임이 확대되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금속제 뿔나팔인 동대각(銅大角)의 기능을 점차 흡수·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불교 사찰에서도 군영의 취타 편성을 받아들여 불교 의식에 나발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감로탱화와 같은 불교 회화에 자주 묘사된다.현재는 <대취타>연주에 사용되며, <대취타>는 기악감상곡으로 연주되거나, 향악정재 <선유락의 반주음악. 불교의식 중 시련절차 등에 연주된다.
나발은 외부에서 유입된 악기가 한국의 전통음악 체계 안에 성공적으로 흡수되고 토착화된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길고 곧은 금속성의 외형과 우렁찬 단일음은 기존의 각(角)과는 다른 독특한 음색과 시각적 위엄을 제공하며, 특히 <대취타>에서 나각과 음색의 대비를 이루며 행진 음악의 장엄함을 극대화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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