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 고동, 나(螺), 패(貝), 대라(大螺), 법라(法螺), 나발(螺鉢), 해라(海螺), 옥라(玉螺), 범패(梵貝), 옥려(玉蠡)
커다란 소라 껍데기의 뾰족한 쪽에 구멍을 뚫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어 연주하는 관악기
자연산 소라를 가공해 만든 나각류 악기의 기원은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넓은 문화권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한국과 일본, 멀리 태평양의 멜라네시아와 폴리네시아 문화권까지 나각류 악기는 학명 카로니아(Charonia tritonis), 속칭 ‘트리톤의 나팔’(Triton’s trumpet)이라 부르는 나팔고둥류의 일종으로 만든다. 인도의 샨카(Shankha), 티벳의 둥카르(Dung-dkar), 폴리네시아의 푸(Pu), 일본의 호라가이(Horagai) 등이 모두 나각류 악기이다. 이들 악기는 소라의 껍데기를 이용하여 만들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고둥’, 고둥의 방언인 ‘고동’이라고도 불렀다.
우리나라 문헌에 나타나는 패, 나, 대라(大螺), 법라(法螺) 등이 모두 나각류의 악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나각은 여러 이름으로 문헌에 등장하여 다양한 쓰임으로 전한다. 『삼국유사』 ‘김현감호’조에 나발(螺鉢)이 등장하는데 한자로 보아 ‘소라나팔’이며 이는 8세기 말 신라 사찰에서 나각을 사용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삼국사기』 「악지」에 고구려 악기로 실려 있는 패(唄)는 중국 문헌의 패(貝)를 잘못 인용한 것으로 나각류 악기임을 알 수 있다. 『고려사』에는 1079년(문종 33) 기록에 일본 상인들이 찾아와 법라 서른 대를 바닷말 삼백 단과 함께 흥왕사에 바치는 내용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1402년(태종 2) 기록에도 명나라 임팔라실리(林八剌失里)ㆍ최강(崔康) 등 장군이 바친 병기(兵器)에, 각(角), 나발(螺鉢) 등이 포함되었다.
한편, 나각은 남방 기원인 불교의 의례에 필수적으로 편성되며, 불교 문화의 성행과 함께 전승도 더 활발히 이루어졌다. 불교 승려들은 수행을 위해 입산하면서, 맹수의 공격을 피하거나 동행자들에게 위치를 알릴 때 나각을 불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고려 때부터 민간에서 질병과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서 불경을 외고 복을 빌었던 경행(經行) 의식에서 『대반야경(大般若經)』을 읊게 하고 나발(螺鉢)을 울렸다고 한다. 불교 의례에서 나각은 나, 법라, 해라(海螺), 옥라(玉螺), 패, 범패(梵貝), 옥려(玉蠡) 등으로도 불렸다.
각종 위장이나 노부의 수레 뒤를 따르던 취라군이 나각을 불었다는 『고려사』 「여복지」 ‘의위’ 기록처럼, 나각은 주로 임금의 행차나 군대 행렬에 사용되었다. 나각을 부는 군악수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조라치(吹螺赤), 내취(內吹), 취고수(吹鼓手)에 편성되었고, 취각군과 함께 군악을 대표하는 악대로 전승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종묘제례악》 중 〈정대업지무〉에 사용된 나(螺)『악학궤범』 정대업지무 의물로 실려 있다.
1711년(숙종 37) 〈조선통신사행렬도 등성행렬〉등에서도 나각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717년(숙종 43)에 왕이 온양으로 행차하는 중 과천 행궁에서 머물렀다가 떠날 때 선전관으로 하여금 나각을 불게 했던 기록이 있으며, 1795년 정조(正祖)의 화성행차를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의 반차도 일부에도 나각이 배치되어 있다. 1902년 『고종임인진연의궤』의 내취악기도에도 나(螺)가 포함되어 있어 그 쓰임을 알 수 있다.
○구조와 형태
커다란 소라의 딱딱한 몸체 껍데기를 사용해 만든다. 소라의 뾰족한 쪽에 구멍을 내어 취구(吹口)로 사용한다. 소라 껍데기를 가공하지 않은 원형 그대로 쓰기도 하고, 천으로 겉 부분을 씌우거나 안쪽을 붉게 칠해 쓰기도 한다. 대취타에 사용하는 나각에는 홍색상모(紅色象毛: 붉은색 털로 만든 장식)를 단다.
○ 음역과 조율법 오선보와 산형
나각은 별도의 지공이 없으며 소라 내부의 나선형 수관을 통해 나오는 자연음 그대로를 낸다. 즉 취구에서 분 바람이 여러 바퀴 휘휘 꼬인 관을 통과하면서 점점 그 음량이 증폭되어, 낮고 굵으며 멀리까지 나가는 지속음을 낸다. 소라의 크기에 따라 음높이가 다르다.
○구음과 표기법
〈대취타〉에서 짝을 이루는 나각과 나발(喇叭)의 구음은 각각 ‘두’와 ‘도’이다. 강세를 표현할 때는 경음인 ‘뚜’와 ‘또’를 쓴다.
○연주방법과 기법
소라의 넓은 쪽 끝이 위를 향하도록 오른손 바닥에 소라 몸을 받쳐 잡고 엄지를 안으로 감아쥔다. 뾰족한 쪽 취구에는 입술을 대고 김을 불어넣어 입술의 진동으로 "뿌우-"하고 소리낸다. 〈대취타〉 연주 때는 나발과 나각이 한 각씩 번갈아 가면서 소리를 낸다.
○연주악곡
〈대취타〉ㆍ〈별가락〉ㆍ〈국거리(굿거리)〉 등에 편성되어 나발과 교대로 연주한다.
○제작 및 관리 방법 바다에서 사는 큰 소라를 잡아 살을 꺼내고, 뾰족한 끝부분을 갈아 구멍을 내고 취구를 만들어 끼운다. 소라의 원형 그대로 쓰기도 하고, 천으로 거죽을 씌우기도 하며 속에 붉은 칠을 하여 모양을 내기도 한다.
나각은 단음 악기이고, 악기마다 다른 음높이를 내므로, 음악 내에서 그 기능이 제한적이다. 그러나 소라가 가진 자연음향으로 낮고 은은한 소리를 내어 여운을 준다. 나발과 함께 전통방식의 신호용 악기로 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고려사』 『악학궤범』 송혜진, 『한국악기』, 열화당, 2001. 정재국 편저, 『대취타』, 은하출판사, 1996. 이상규,「구음을 활용한 대취타 장단 지도 연구」, 『국악교육』 33, 2012.
오지혜(吳䝷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