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소라의 각정(殼頂)에 낸 취구(吹口)에 공기를 불어 소리 내는 관악기.
수나라 개황 초(589-605)의 칠부악(七部樂)에 고려악이 포함되어 있고, 수나라 대업(大業, 605-612) 때 구부기(九部伎) 중 고려악에 패(貝)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우리나라에서 나각을 연주하기 시작한 것은 늦어도 7세기 초 이전이라고 할 수 있다.

○ 역사적 변천나각과 같이 소라 껍데기를 악기로 사용하는 문화는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나라의 구부기의 고려기에 패가 포함되어 있고(『수서』 권15. 지10), 『삼국유사』에는 8세기경 신라의 사찰에서 나발(螺鉢)을 사용했음을 짐작게 하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국왕의 행차 의식인 위장에 취라군이 편성되었고, 『고려사』에는 일본 상인들이 흥왕사라는 사찰에 법라(法螺) 30대를 바쳤다는 내용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그 용도가 확대되어 조선전기에는 향악일무와 향악정재의 의물로도 사용되었고, 조선후기에는 취고수나 취타내취 악대의 연주 악기에 포함되었으며, 향악정재 <선유락>의 반주음악 연주에도 사용되었다. 불교의식에서는 고려시대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는 <대취타> 연주에만 사용되고 있으며, <대취타>는 무대 공연이나 불교 의식 등에 사용된다.

송혜진, 『한국악기』, 열화당, 2001.
이상규,「구음을 활용한 대취타 장단 지도 연구」, 『국악교육』 33, 2012.
이숙희. 「불교취타악의 형성 배경」. 『한국음악연구』 37, 2005
정재국 편저, 『대취타』, 은하출판사, 1996.
오지혜(吳䝷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