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후 순조 9년(1809)에 제작된 『기사진표리진찬의궤(己巳進表裏進饌儀軌)』와 순조 27년(1827) 『자경전진작정례의궤(慈慶殿進爵整禮儀軌)』에도 황초삼(黃綃衫)이 여령복식으로 기록되고 있다. 『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1829) 공령(工伶)조에 “각무(各舞)의 정재여령은 ‘황초단삼(黃綃單衫)’, 춘앵전(春鶯囀) 정재여령은 ‘황초삼’을 입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권수(卷首)에 실린 여령복식 그림 옆에는 황초삼이란 옷의 이름이 기록되어, 황초삼과 황초단삼이 같은 옷임을 알 수 있다.

이후 『헌종무신진찬의궤(憲宗戊申進饌儀軌)(1848)와 고종(高宗) 14년(1877)의 『진찬의궤』, 광무(光武) 6년(1902) 『진연의궤(進宴儀軌)』 까지 황초삼은 화관과 함께 여령의 복식으로 사용되었다.

춘앵전에서 여기(女妓)가 착용한 것은 나삼(羅衫)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소용된 옷감의 내용을 보면 홍색의 안감을 두어 만든 겹옷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형태에는 차이가 없어 정재여령의 황초삼은 홑옷임을 강조하여 황초단삼, 춘앵전의 복식은 나삼 혹은 황초삼으로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이후 20세기 초반을 거치면서 여령의 황초삼의 색상이 꾀꼬리의 노란색임을 강조하여 ‘앵삼(鶯衫)’으로 부르거나 혹은 ‘몽두리(蒙頭里)’라고 하였다. 또한 황초삼의 형태도 무녀(巫女)가 입는 무복(巫服)의 몽두리와 유사해졌다. 오늘날 국립국악원의 공연에서 춘앵전 의상을 비롯해 황초삼을 입고 공연하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은 황초삼의 모양은 『진찬의궤』의 내용을 통해 대한제국 때까지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20세기 초반에 들어서는 황초삼의 소매 색동 아랫부분에 자수 장식이 추가되는 변화를 보였다. 소매에 자수가 추가된 모습은 그림엽서에 등장하는 관기의 복식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이러한 양식은 계속 이어졌다.
○ 재질 및 재료『기축진찬의궤』의 품목(稟目)에는 여령복식에 소요된 소재ㆍ분량ㆍ가격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황초삼에는 황초(黃綃) 17척(尺)이가 사용되었다. 안감의 설명이 없는 것으로 보아 홑옷이며 따라서 황초단삼이라 칭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무신진찬의궤』 악기풍물조에는 춘앵전 차비가 입을 옷 중 나삼(羅衫)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춘앵전을 추는 여기가 입는 황초단삼의 내용과 완전히 일치한다. 즉, 겉감으로 무늬가 있는 노란색 갑사(甲紗)를 사용하고 안감으로 진홍색의 도류문(桃榴紋) 갑사ㆍ깃〔領〕과 고름[古音]은 자적색(紫的色) 도류문 갑사로 만들며, 양쪽에 있는 색동과 방령(方領)은 진홍ㆍ초록ㆍ자적색의 무늬가 있는 갑사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홍나영(洪那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