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색 치마, 남치마, 남상(藍裳)
조선후기 궁중의 연향에서 정재와 악기연주 등을 담당한 차비여령(差備女伶)이 입는 남색(藍色)의 치마.
조선 시대에는 왕실이나 민가에서도 남색치마를 즐겨 입었다. 조선후기 궁중에서도 연향에 참여하는 춤을 추는 여령(女伶)은 물론 상궁(尙宮)부터 의장(儀仗)을 드는 비자(婢子)들을 포함한 차비여령(差備女伶)은 대부분 남색 치마를 입었다. 남치마 위에 작은 크기의 홍색(紅色) 치마를 덧입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보다 격식을 갖춘 옷차림에 해당된다. 다만 동기들은 홍색 치마와 말군(襪裙)을 입었다.
조선 시대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남색 치마를 즐겨 입었으며, 특히 경사스런 날에는 더욱 남색치마를 많이 입었다. 차비여령이 착용하는 남색상은 진연의궤(進宴儀軌, 1744)에 처음 보이며, ‘藍裳’으로 기록되어 있다.
○ 쓰임 및 용도
조선후기 차비여령 중 정재여령은 머리에 화관(花冠)을 쓰고, 저고리와 남색 치마를 입은 다음, 그 위에 남색 치마보다 크기가 작은 홍색 비단 치마[紅綃裳]를 겹쳐 입고, 다시 그 위에 황초삼(黃綃衫)을 입고, 가슴에 수대(繡帶)를 두르고, 손목에 오색한삼(五色汗衫)을 끼며, 초록혜(草綠鞋)를 신었다. 이와 같이 남색상 위에 홍초상(紅綃裳)을 덧입는 것이 보다 격이 있는 옷차림이었다.
『평안감사향연도(平安監司饗宴圖』에서 부벽루 연회도 부분을 보면 동기들은 모두 홍색치마를 입고 있는 것에 비해 다른 무용수들은 홍색과 남색 치마를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형태 및 구조 남색상의 형태와 구조는 여러 폭의 천을 연결하고 주름을 잡아 치마말기에 달아놓은 조선 시대 여자치마와 동일하다. #5 영상 ○ 기타 남색상은 진찬의궤 악기풍물에도 별도의 옷감이나 소요물품을 적지 않을 정도로 가장 기본적인 조선 시대 여성 복식이었다. ○ 역사적 변천 조선전기에는 『악학궤범(樂學軌範)』의 내용으로 보아 여기들이 남색 저고리를 입고 아래에는 속칭 보로라고 하는 상(裳)을 입었으나 조선후기에는 여기들이 초록 저고리에 남색상을 많이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1829) 권3 공령(工伶)을 보면 치마를 이중으로 입는 여령들은 모두 안에 남치마를 입고 위에 홍치마를 입은 반면 치마를 이중으로 입지 않은 여령들은 홍치마만 입은 것을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기축진찬도병(己丑進饌圖屛)』 그림에서 남치마 위에 홍치마를 입은 정재여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무신진찬의궤(戊申進饌儀軌)』(1848) 에서 내진찬(內進饌) 및 의위(儀衛)를 보면 “차비여관(差備女官)은 어우미(於亐味)를 쓰고, 녹색 원삼(圓衫)을 입었다. 그 안에는 남색 치마, 겉에는 홍색사로 만든 치마를 입고 남색 금수대(金繡帶)를 두르고 홍색 온혜(溫鞋)를 신는다”고 되어 있다. 뿐 아니라 각각의 차비들도 머리에 가리마(加里麻)를 쓰고 초록 단의(丹衣)나 황초삼(黃綃衫)을 입는데, 치마는 모두 남치마를 안에 입고 그 위에 홍치마를 입었다. 오직 문밖에 의장봉지비자(儀仗奉持婢子)만 가리마에 초록 단삼(丹衫)ㆍ남색상(裳)ㆍ백한삼(白汗衫)ㆍ흑혜(黑鞋) 차림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무신진찬도(戊申進饌圖)』를 비롯하여 『임인진찬의궤(壬寅進饌儀軌)』(1902.11) 등에서 확인된다. 현재의 공연에서도 남색상은 꾸준히 착용되고 있다.
조선 시대 왕실이나 반가의 대례복을 입을 때도 남색스란치마를 입고 그 위에 홍색스란치마를 겹쳐 입는데, 여자 무용수가 입는 치마의 경우는 스란단을 대지 않았고 남색상 위에 크기가 작은 홍초상을 두르기도 하였다.
『고종임인진찬의궤(高宗壬寅進饌儀軌)』 『기축진찬도병(己丑進饌圖屛)』 『기축진찬의궤(己丑進饌儀軌』 『무신진찬의궤(戊申進饌儀軌)』 『악학궤범(樂學軌範)』 『평안감사향연도(平安監司饗宴圖』
이경자ㆍ홍나영ㆍ장숙환, 『우리옷과 장신구』, 열화당, 2003.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개정판 동아시아복식이 역사』, 교문사, 2020. 김남정, 「조선시대 치마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0. 윤은영, 「궁중정재 춘앵전(春鶯囀) 복식 연구」, 전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청구논문, 2015.
홍나영(洪那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