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재질 및 재료개책을 제작하는 데 소용되는 물목은 1777년(정조 1) 『악기조성청의궤(樂器造成廳儀軌)』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백휴지(白休紙) 2(兩), 저포(苧布) 1척(尺) 3촌(寸), 명유 1사[夕], 정철중사(正鐵中絲) 1척 2촌, 석자황(石紫黃) 2분(分), 송연(松煙) 5분, 아교 1전(戔), 중동사(中銅絲) 4촌, 교말(膠末) 1홉[合], 남향사(藍鄕絲) 2분, 탄(炭) 5홉이 소요되며, 끈으로 사용하는 흑주(黑紬)는 길이 1척, 너비 5분이다. 대(帶)에 소용되는 물목은 백주(白紬)이다. 길이는 4척 7촌, 너비 1촌 5분이 들어가며, 백향사(白鄕絲) 1분이 들어간다. ○ 착장방법착장복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보이는데, 『악학궤범』에는 비난삼(緋鸞衫), 백주중단(白紬中單), 백초대(白綃帶), 백포말(白布襪), 오피리(烏皮履)와 함께 개책을 착용한다고 하였다. 『종요의궤(宗廟儀軌)』(1706) 이후에는 비난삼이 홍주의로 바뀌었고, 백초대는 색조대(色絛帶)로 바뀌었으며, 『춘관통고』에서는 백주대(白紬帶), 『육전조례』에는 흑사대(黑絲帶)로 바뀌었다.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에서 확인되는 등가·헌가 공인은 흑말대를 띠고 있고, 헌가공인이 착용한 개책에서는 앞의 이마 부분과 뒷부분에 자황칠을 한 모습이 확인된다. ○ 역사적 변천1433년(세종 15) 제례악(祭禮樂)을 연주하는 악공들이 검은 베로 만든 두건[黑布頭巾]을 쓰고 있는데, 모양이 흉하고 근원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박연의 건의에 따라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의 제도를 본받은 개책관을 착용하게 되었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는 아부제례악의 등가·헌가 악생과, 속부제례악의 등가·헌가 악공이 개책을 착용한다고 되어있고, 대한제국 시대까지 지속되었다. 이외에도 1739년(영조 15) 친경을 할 때 임금 앞에서 소를 끄는 두 사람을 서인(庶人)중에서 골라 강의(絳衣)와 개책을 갖추고 돕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악공 외에도 친경시 서인의 관모로 착용된 사례가 확인된다. 일제강점기에 문묘제례악과 종묘제례악을 제외한 모든 제례가 없어짐에 따라 이후 개책은 문묘제례악과 종묘제례악 연주자가 착용했고,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이민주(李民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