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조선전기 처용무 관복에 포함되어 있는 홑겹 저고리 형태의 옷.
② 조선후기 이후 정재 등 춤을 출 때 손목에 매달아 착용하는 원통형의 천.
처용무를 추는 무용수가 의(衣)의 안쪽에 받쳐 입는 긴소매의 흰색 옷이라는 의미도 있고, 무용수가 손목에 끼는 원통형 천을 의미하기도 한다. 손목에 두르는 한삼의 경우 조선시대 여령은 오색한삼을 기본으로 정재에 따라 다른 색 한삼을 사용하였으며, 무동은 한 가지 색으로 만들어진 한삼을 착용하였다. 시대가 내려오면서 넓이와 길이가 커지고 색상이 늘어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긴 소매를 활용하여 춤사위를 강조하고 표현을 확대하는 무용은 예로부터 내려온 전통이며,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서 소매가 긴 의복인 장수의(長袖衣)를 볼 수 있다. 춤을 출 때 착용하는 한삼의 형태와 구체적 설명은 『악학궤범』(樂學軌範, 1493)에 처음 나타난다. 『악학궤범』의 한삼은 저고리 형태의 옷이고, 처용무 관복에만 포함되어 있다.
○ 쓰임 및 용도
한삼을 착용하고 추는 춤은 궁중 정재와 전통 가면극의 춤이다. 조선전기에는 처용무를 출 때만 한삼을 착용했고, 저고리 형태의 한삼이었다. 조선후기에는 대부분의 정재를 출 때 여령과 무동이 한삼을 착용했고, 손목에 끼는 형태였다. 다만 일부 여령 정재와 무동 정재에는 정해진 한삼을 착용했다.
『(신축)진연의궤』(1901)에는 여령 졍재 중 <가인전목단> <춘앵전> 오색한삼을 착용하고, <향령무>에는 홍한삼(紅汗衫) 연화대무에는 옥색한삼(玉色汗衫)을 매는 것으로 구분되어 있다.
『진작의궤』(1828)에는 무동 정재 중 <향령무>와 <춘앵전>에는 홍한삼(紅汗衫), <가인전목단>에는 녹한삼(綠汗衫), <무산향>에는 녹사한삼(綠紗汗衫)을 착용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현재 전승되는 탈춤, 산대놀이, 오광대의 일부 등장인물도 한삼을 착용한다. 은율탈춤의 소무· 새색시는 색동한삼을 착용하고, 봉산탈춤의 취발이는 흰색한삼을 착용하며, 강령탈춤의 취발이와 원숭이는 흰색한삼을 착용하고, 용산삼계집은 색동한삼을 착용한다. 송파산대놀이의 상좌는 붉은색 혹은 남색한삼을 착용하고, 취발이는 흰색한삼을 착용한다. 퇴계원 산대놀이의 애사당은 색동한삼을 착용하고, 고성오광대의 선녀와 가산오광대의 소무는 흰색한삼을 착용한다.
○ 구조 및 형태
처용무 복식으로 착용된 한삼은 소매가 긴 저고리이다. 『악학궤범』의 한삼 도설에서는 평범한 저고리로 보이지만, 함께 적혀있는 치수를 보면 한삼의 옷길이는 1척3촌, 소매길이는 4척5촌으로 소매가 굉장히 긴 옷이다. 겉에 입는 의의 소매길이는 2척7촌5분으로 한삼의 소매길이가 의의 1.5배가 넘을 정도로 길다. 따라서 한삼 위에 의를 입으면 한삼의 좁고 긴 소맷자락이 의의 소매 바깥으로 길게 늘어지게 된다.
『(무신)진찬의궤』의 복식도 중 처용복식 도설에서는 의의 소매 끝에 가늘고 좁은 한삼이 연결된 모습으로 그려져 있고, 이러한 착용모습은 처용무가 그려진 17세기 《사궤장연회도첩》ㆍ18세기 《기사계첩》ㆍ 19세기 《무신진찬도병》등의 회화 속에서도 확인된다.

여령과 무동의 한삼은 원통형으로, 한삼을 손에 끼운 후 손목 부분의 끈을 조여 착용한다. 여령은 여러 색상을 색동처럼 연결한 오색한삼을 기본으로 착용하였고 무동은 한 가지 색상으로 만들어진 한삼을 착용하였다.


여령은 대부분의 정재에서 오색한삼을 갖추었으나 향령무에서는 홍한삼, 가인전목단에서는 옥색한삼을 착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백한삼을 써서 다채로움을 추구하였다. 이처럼 정재별로 사용하는 한삼을 구분하면서 한삼의 종류가 여러 가지로 분화되었다. 또한 조선 후기의 좁고 짧았던 한삼은 이후 점차 넓고 길어졌고, 오방색(五方色)으로 오단을 연결했던 오색한삼은 일곱 가지 색을 연결하여 칠단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 재질 및 재료
『악학궤범』에 기록된 처용의 한삼은 동ㆍ서ㆍ남ㆍ북ㆍ중앙의 오방 처용 모두 백색 비단[白綃]으로 만들었다. 여령과 무동의 한삼 역시 초(綃)ㆍ갑사(甲紗)ㆍ면주(綿紬)ㆍ화주(禾紬) 등 비단으로 만들었으나 한삼의 종류와 용도ㆍ정재ㆍ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첫째, 오색한삼은 다섯 가지 색상의 비단을 색동처럼 연결하여 만들었고 홍한삼ㆍ녹한삼ㆍ옥색한삼은 한 가지 색상의 비단만으로 만들었다. 궁중기록화에서 보이는 오색한삼의 색은 대부분 오방색에 가까우며 색상 배열순서는 일치하지 않지만 여러 색의 옷감을 같은 너비로 연결하여 만들었다. 둘째, 용도에 따라 본 공연용과 연습용[習儀] 한삼을 구분하여 제작하였다. 셋째, 정재의 중요도에 따라 옷감의 품질을 다르게 하여 춘앵전 정재의 한삼은 다른 정재보다 고급 비단으로 제작하였다. 넷째, 신분에 따른 차등도 있어서 선천(宣川) 지역에서 뽑아 올린 기녀[選上妓]에게는 일반여령에 비해 고급 한삼을 만들어주었다.
○ 제작방법
오색한삼 혹은 오채한삼이라 기록된 한삼은 길이와 너비가 동일한 다섯 가지 색상의 비단을 색동처럼 연결하여 원통형이 되도록 만들었다. 『(정축)진찬의궤』로부터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면, 정축년인 1887년의 궁중잔치에서 춘앵전 정재를 연습하기 위한 오색 한삼을 새로 만들었는데 이때 한삼 재료로 홍색ㆍ남색ㆍ황색ㆍ백색ㆍ자적색의 비단[綃]을 각 길이 2척ㆍ너비 3촌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다섯 가지 색상의 비단을 똑같은 크기로 잘라서 연결하였다. 한삼의 윗부분에는 오색 비단실[五色眞絲]로 만든 매듭끈을 관통시켜 잡아당기고 끝은 술장식을 하였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20세기 초 여령의 한삼 유물을 보면 길이 65cmㆍ둘레 90cm 크기이고, 일곱 가지 색상의 비단이 자적색ㆍ백색ㆍ홍색ㆍ황색ㆍ분홍색ㆍ연두색ㆍ홍색ㆍ남색ㆍ백색 순서로 연결되어 있다. 손목부분에 해당하는 자적색 비단 끝에는 끈목이 끼워져 있으며 여러 가지 색실로 사색판매듭을 엮고 끝부분은 딸기술로 마무리했다

○ 착용방식
처용무 복식의 한삼은 저고리처럼 입고 그 위에 의를 착용하였으며, 여령과 무동 정재복식의 한삼은 손목에 매어 착용하였다. 문헌기록에서 오색한삼ㆍ홍한삼ㆍ옥색한삼 등을 착용하는 동사로 항상 ‘繫(맬 계)’를 사용하였다. 이는 한삼의 위쪽 가장자리에 매듭끈을 끼워 넣은 후 잡아당겨 손목에 매어서 착용했기 때문이다.
○ 역사적 변천
예로부터 손이 보이지 않도록 덮어서 가리는 것이 예의였기 때문에, 안쪽에 받쳐 입었던 한삼의 소매가 점점 길어졌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에는 한삼이 분리되어 손목에 원통형의 천을 두르는 간단한 형태로 바뀌었다. 손목에 끼워 매달았던 한삼의 크기는 처음에 좁고 짧았으나, 대한제국기를 지나 20세기 초반으로 들어서면서 점차 넓고 길어졌다.
궁중 정재를 출 때 착용하는 한삼도 조선전기에는 저고리 형태였고, 처용무를 출 때만 착용했다. 조선후기에는 여기와 무동 모두 정재를 착용했고, 그 형태는 손목에 끼는 형태로 바뀌었으며, 색깔도 정재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현재도 무용수들이 손목에 흰색 한삼이나 오색 한삼을 착용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편, 『(기생 100년), 엽서 속의 기생읽기』,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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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영(朴嘉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