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홀기(舞圖笏記), 여령정재홀기(女伶呈才笏記), 무동정재홀기(舞童呈才笏記), 여령각정재무도홀기(女伶各呈才舞圖笏記), 무동각정재무도홀기(舞童各呈才舞圖笏記)
궁중무용인 정재의 무용절차와 반주음악 및 창사(唱詞)·구호·치어 등의 내용과 참여한 무인(舞人)의 이름·소속 및 춤의 대형(隊形) 등을 기록한 홀기 형태의 무보(舞譜)
홀기(笏記)는 ‘혼례(婚禮)나 제례(祭禮) 때에 의식(儀式)의 순서(順序)를 적은 글’을 의미하고, 이 같은 글을 적어 의례를 예행(豫行)하거나 설행(設行)할 때 활용하기 위하여 홀(笏) 모양과 크기의 병풍식 첩장(帖裝)으로 제책한 기록물을 가리킨다. 정재무도홀기는 궁중무용인 정재의 습의(習儀)·예행·설행시의 필요에 의하여 춤과 관련된 일체의 정보 즉 무용절차와 반주음악 및 창사(唱詞)·구호·치어 등의 내용과 참여한 무인(舞人)의 이름·소속 및 춤의 대형 등을 모아 기록한 책자로, 현장에서 손에 들고 쉽게 활용하기 위하여 홀기 형태로 제책되었다.
궁중 무용의 춤 동작이나 반주음악·창사 등을 기록한 것은 『고려사』 「악지」에 처음 보인다. 당악정재 <헌선도>·<수연장>·<오양선>·<포구락>·<연화대>와 속악정재 <무고>·<동동>·<무애>의 무보(舞譜)를 수록하고 있는 『고려사』에서는 속악정재 연행 중에 가창(歌唱)되는 정읍·동동·무애의 노랫말[詞]은 싣지 않았는데, 이는 <동동>의 예로 비추어 ‘사리부재(詞俚不載)’라 하여 싣지 않은 듯하다. 비록 홀기의 형태로 제책되지는 않았으나, 내용면에서 현재 전하는 홀기와 크게 차이가 없는 형태의 무용기록은 『고려사』부터 존재하는 셈이다. 이들 『고려사』의 정재 기록은 『악학궤범』 권3 「고려사악지당악정재」와 「고려사악지속악정재」에 전재되어 전하고 있다. 『악학궤범』 권4 「시용당악정재도의」와 권5 「시용향악정재도의」의 정재 기록은 무대(舞隊)의 대형과 동작 및 창사 등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어 현전 정재무도홀기와 내용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악학궤범』은 대형 책자(冊子)로 제책된 것이라서, 실제 연행의 준비과정이나 연행 현장에서 참고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있었다. 따라서 보다 손쉽게 참고하기 위하여 휴대하기 편하도록 홀기 형태로 제책한 것이 현재 국립국악원에 소장된 『악학궤범홀기』(숙종 31년, 1705)이다. 『수작의궤(受爵儀軌)』(영조 41년, 1765)에 의하면 당시 장악원에 속악관련 홀기가 존재하였으며, 수작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조와 장악원 사이에 오고간 공문에 음악 및 정재와 관련한 자세한 기록을 급히 보고하라는 등의 논의가 있는 점으로 보아, 당시에도 정재무도홀기의 존재 가능성이 있으나, 현재 실물이 남아 전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정재 관련 홀기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진찬정재홀기』(1848)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정재홀기』(1848)이다. 그러나 이 두 홀기는 통상적인 정재무도홀기와는 체제와 내용이 다르다. 이 두 홀기가 무신년(1848) 진찬례에서 연행될 정재의 악장과 창사 및 무인들에 대한 기록을 담고는 있으나, 춤의 대형과 진행 등을 기록하지 않아 제대로 된 ‘정재무도홀기’로 보기는 어렵다. 현존 정재무도홀기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장서각 소장의 소형홀기인 『사자무항장무무도홀기』(1887)로 보인다. 그리고 대형홀기로는 연대미상이지만 1890년대 초반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장서각 소장 『무도홀기』(도서번호 2-2883)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무법홀기』(도서번호 고궁 2360)가 비슷한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두 홀기의 내용은 동일하다. 그리고 계사년(1893)과 갑오년(1894) 궁중연향과 관련된 홀기가 장서각·국립중앙박물관·국립국악원 등에 남아 전하며, 비교적 늦은 시기의 것으로는 신축년(1901)의 진찬과 진연에 관련된 장서각 소장 홀기들이 있다. 장서각 소장의 정재무도홀기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한국학자료총서1 정재무도홀기』(1994)에 흑백으로 영인 출간되었으며, 국립국악원의 『한국음악학자료총서 57집』(2022)에 고화질 칼라로 영인·간행되었다.
현재 전하는 정재무도홀기는 제작된 시기가 서로 다르므로 체제가 동일하지는 않다. 그러나 다수의 홀기가 소장되어 있고, 연대와 용도가 분명하게 밝혀진 홀기들인 장서각 소장 홀기를 중심으로 체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체재 및 규격 홀기의 규격은 가로 7cm×세로 24cm 정도이며, 홀기에 따라 1cm 정도의 차이가 있다. 편찬자는 미상이며, 모두 필사본이다. 표지는 홍색명주로 보강·장식하였고, 백색명주에 청색명주로 테를 둘러 제첨(題簽)을 붙여 표제를 묵서(墨書)하였다. 각 기관에 소장된 홀기들은 표지가 떨어진 경우가 많아 본래의 책명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표지가 완전한 홀기에 의하여 그 표제를 복원해보면 『외진연시무동각정재무도홀기 신축』 또는 『진찬시여령각정재무도홀기 신축』처럼 행사명과 무동 또는 여령 여부, 간지(干支)가 드러나야 완전한 홀기명으로 보인다. 홀기의 내용은 저지(楮紙)에 묵서하였고, 뒷면에는 남색명주를 붙여 반대방향으로 펼칠 수 없게 하였다. 광곽(匡郭)은 위 아래 단변(單邊)이며, 계선(界線)은 홍사란(紅絲欄)이고, 어미(魚尾)는 없으며, 절첩장(折帖裝)이다. 내용은 한 면에 4행 25자 내외로 기록되었으며, 세주(細註)는 쌍행(雙行)이다. ○ 현전 정재무도홀기 소장처 및 편찬연대
『사자무항장무무도홀기』(1887) | 무도홀기 | 도서번호 2-2884 |
『헌무의홀기』(1894) | 무동홀기 | 도서번호 2-2892 |
『여령각정재무도홀기』(1901) | 여령홀기 | 도서번호 2-2885, 2-2887 |
『여령각정재무도홀기』(1901) | 여령홀기 | 도서번호 2-2888 |
『외진연시무동각정재무도홀기』(1901) | 무동홀기 | 도서번호 2-2889, |
『외진연시무동각정재무도홀긔』(1901) | 무동홀기 | 도서번호 2-2890(한글본), 2-2891(한글본) |
『여령각정재무도홀기』(1901) | 여령홀기 | 도서번호 2-2886 |
『회작시여령각정재무도홀기』(1901) | 여령홀기 | 도서번호 2-2894(한글본), 2-2895 |
『무도홀기』(연대미상) | 무동홀기 | 도서번호 2-2883(*고궁박 고궁2360과 동일) |
『헌무의홀기』(연대미상) | 여령홀기 | 도서번호 2-2893 |
『진찬정재홀기』(1848) | 여령홀기 | 도서번호 古朝29(*무도홀기로 보기 어려움) |
『정재홀기』(1848) | 여령홀기 | 도서번호 고궁3786(*무도홀기로 보기 어려움) |
『무법홀기』(1892·1894 이전) | 무동홀기 | 도서번호 고궁 2360(*장서각 2-2883과 동일) |
『정재무도홀기』(1893) | 여령홀기 | 도서번호 구4565 |
『정재무도홀기언해본』(1893) | 여령홀기 | 도서번호 구4566(한글본) |
『정재무도홀기』(1893) | - | 도서번호 KMU201400022 |
『궁중정재홀기-죽헌』 | 여령홀기 | 도서번호 KMU201400053 |
『홀기』 | 여령홀기 | 도서번호 KMU201400044 |
『악학궤범홀기』(1705) | - | 도서번호 KMU201400045 |
○ 구성 및 내용
정재무도홀기는 궁중의 연향에서 추던 춤인 정재(呈才)의 절차를 비롯하여 여러 필요한 정보와 내용을 소상하게 기록한 책자로, 한 연향에서 추는 여러 정재를 모은 ‘대형홀기’와 개별 정재 하나 또는 둘 정도만 수록한 ‘소형홀기’가 있다. 오늘날 공공기관 등에 소장되어 학계에 알려진 무도홀기는 대부분 대형홀기들이고, 소형홀기는 개인적으로 소장된 것이 더러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형홀기도 수록내용은 각 정재별로 기록되는 바, 그 내용은 춤의 이름[舞名, 呈才名]과 춤의 대형(隊形)이 먼저 제시된다. 대형은 문자(文字)로 기록하는데, 일반적으로 무인(舞人) 한 사람을 ‘무(舞)’로 표기하고, 특정한 역할이 주어진 경우는 죽간자(竹竿子)·선모(仙母)·중무(中舞)처럼 기록하며, 의물을 들거나 무구를 설치하는 역할의 경우는 황개(黃蓋)·작선(雀扇)·집당(執幢)·봉탁(奉卓)·봉반(奉盤) 등으로 기록한다. 그리고 설치된 무구의 위치도 고(鼓)·반통(盤桶)·구문(毬門)처럼 문자로 표기한다.
무인(舞人)은 이름과 신분 또는 소속을 기록하는데 무(舞) 또는 담당역할 밑에 작은 글씨로 적는다. 남성인 무동(舞童)의 경우는 성명(姓名)만 기록하고, 여성인 여령(女伶)은 이름과 소속을 기록하는데, 서울에 거주하는 여령[京妓]의 경우는 본래의 소속 업무에 따라 내의원(內醫院)이나 혜민서(惠民署) 소속은 의녀(醫女), 상의원(尙衣院) 소속은 상방(尙方)으로 표기하고, 지방에서 선상(選上)된 향기(鄕妓)는 평양(平壤)·선천(宣川)·안동(安東) 등 출신지역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여령의 이름은 비연(飛鷰)·금낭(錦娘)·옥엽(玉葉)·비취(翡翠)·영월(暎月)·화향(花香) 등으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여령의 본명이라기보다는 연향 참여나 예술 활동을 위하여 별도로 지은 일종의 예명(藝名)으로 보인다.
정재무도홀기 각 정재의 처음에는 무용의 대형(隊形)이 기록되었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소위 ‘초입배열도(初入排列圖)’라 하여 처음 입장할 때의 대형을 문자로 기록하였으나, 춤의 대형이 다채롭게 변하는 경우는 각각의 대형도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봉래의(鳳來儀)>는 치화평무회무도(致和平舞回舞圖)·취풍형무작대도(醉豐亨舞作隊圖)가 표기 되었으며, <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는 제1변부터 제9변까지의 변무도(變舞圖)가 모두 표기되었는데, 일변상대무(一變相對舞)·이변수수무(二變垂手舞)·삼변상배무(三變相背舞)·사변산작화무(四變散作花舞)·오변수수무·육변오방무(六變五方舞)·칠변염수무(七變斂手舞)·팔변사선무(八變四仙舞)·구변염수무(九變斂手舞)까지 대형과 자세한 설명이 기록되었다.
춤의 내용은 주악(奏樂)과 무변(舞變)의 지휘 역할을 맡는 박(拍)을 기준으로 기록하였다. 예를 들어 “박을 치면 죽간자 두 명이 춤추며 나아가서고, 음악을 그치면, 구호 한다(拍竹竿子二人足蹈而進立樂止口號)”다시 “박을 치면 음악은 중강을 연주한다(拍樂奏中腔)”라는 방식으로 기록한다. 정재무도홀기의 정재 반주음악 곡명은 아명(雅名)을 위주로 기록하고, 속명(俗名)을 작은 글씨[細註]로 표기하였다. 그러나 아명이나 속명만으로 구체적인 반주 악곡을 판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아서, 정재무도홀기에 의한 정재 복원에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정재무도홀기에는 정재에서 불려지는 구호(口號)·치어(致語)·창사(唱詞) 등의 노랫말도 기록되었다. 당악정재(唐樂呈才)의 구호·치어·창사는 모두 한문으로 기록되었고, 한글본 홀기의 경우는 한문 글귀의 발음을 한글로 표기하였다. 이들 작품의 시형(詩形)은 매우 다양한데, 변려체(騈儷體)로 지어진 것이 많으나, 경우에 따라 5언이나 7언 한시(漢詩)로 된 것도 많다. 구호는 죽간자가 부르는 진구호와 퇴구호로 나뉘며, 치어는 선모(仙母)·중무(中舞)·금척인(金尺人) 등 해당 정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무인이 부른다. 반면에 창사는 참여한 전체 무인 또는 각 대별(隊別)로 나누어진 무인들이 부르며, 경우에 따라서는 선모와 협무(挾舞)가 함께 부르기도 한다. 특히 당악정재에서는 무인들이 동작을 멈추고 소매를 들어 올린채로 창사를 부르기도 하지만, 반주음악의 선율을 따라 함께 춤추며 부르는 수악절창사(隨樂節唱詞)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당악정재의 창사는 대부분 한문이지만, 당악정재처럼 죽간자가 참여하는 독특한 양식의 향악정재인 <봉래의>에서는 가곡 농·낙·편(弄·樂·編) 가락에 맞추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해동장·근심장·원원장·주국장·적인장·야인장·상덕장·적조장·태자장·봉천장·일부장·성손장·천세장이 국한문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봉래의>를 제외한 대부분의 향악정재에는 구호와 치어가 없으며, 대부분 무인들에 의한 창사가 불려진다. <향령무>·<가인전목단>·<무고>·<첩승무>·<춘앵전> 등은 한문 창사이며, <경풍도>와 <만수무>에서는 한문 창사와 국한문 창사가 함께 불리기도 한다. 반면에 <사선무>·<무애무>·<선유락>에서는 국한문 창사만 부른다. 특히 <사선무>·<경풍도>·<만수무>·<무애무>의 창사는 가곡 편삭대엽 선율에, <향령무> 창사는 계락 선율에 얹어 노래한다.
그러나 같은 정재라도 연행 시기에 따라 구호·치어·창사에 차이가 드러나기도 한다. 특히 무동 정재의 경우 당악정재임에도 죽간자를 생략하거나 죽간자에 의한 구호를 생략하기도 하고, 창사를 간략화 하거나 생략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정재무도홀기에서 춤 동작의 표기에는 전문적인 술어(述語)를 사용하는데, 족도이진입(足蹈而進立)·무진이입(舞進而立)·상연우선회무(相連右旋廻舞)·염수(斂手)·족도(足蹈)·향섭족도(響屧足蹈)·일불일전(一拂一轉)·상대이무(相對而舞)·상배이무(相背而舞)·제행이무(齊行而舞)·선전이무(旋轉而舞) 등 200종 가까운 술어가 사용된다.
[홀기 수록 내용]
무
도 홀 기
정
재 명 |
소장처 | 장서각 | 중앙도서관 | 고궁박물관 | 중앙박물관 | 국립국악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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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 | 1894 | 1901 | 1901 | 미상 | 1848 | 1848 | 1893 | 1893 | 1893 | 미상 | 미상 | 1705 | ||||||||||
책명 |
사 자 무 항 장 무 무 도 홀 기 |
헌 무 의 홀 기 |
여 령 각 정 재 무 도 홀 기 |
여 령 각 정 재 무 도 홀 기 |
외 진 연 시 무 동 각 정 재 무 도 홀 기 |
여 령 각 정 재 무 도 홀 기 |
회 작 시 여 령 각 정 재 무 도 홀 기 |
무 도 홀 기 |
헌 무 의 홀 기 |
진 찬 정 재 홀 기 |
정 재 홀 기 |
무 법 홀 기 |
정 재 무 도 홀 기 |
정 재 무 도 홀 기 언 해 본 |
정
재 무 도 홀 기 |
궁
중 정 재 홀 기 죽 헌 |
홀 기 |
악 학 궤 범 홀 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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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 무동 | 여령 | 여령 | 무동 | 여령 | 여령 | 무동 | 여령 | 여령 | 여령 | 무동 | 여령 | 여령 | - | 여령 | 여령 | - | ||||
도서번호 | 2-2884 | 2-2892 2-2887 |
2-2885 | 2-2888 |
2-2889 2-2890(ᄒᆞᆫ) 2-2891(ᄒᆞᆫ) |
2-2886 |
2-2894(ᄒᆞᆫ) 2-2895 |
2-2883 | 2-2893 |
고조 29 |
고궁 3786 |
고궁 2360 |
구 4565 |
구 4566(ᄒᆞᆫ) |
KMU 2014 00022 |
KMU 2014 00053 |
KMU 2014 00044 |
KMU 2014 000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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舞譜 없음 | ||||||||||||||||||||||
향 악 정 재 |
1 | 가인전목단 | ○ | ○ | ○ | ○ | ○ | ○ | ○ | ○ | ○ | ○ | ○ | ▽ | ○ | |||||||
2 | 검기무 | ○ | ○ | ○ | ○ | ○ | ○ | ○ | ○ | ○ | ||||||||||||
3 | 경풍도 | ○ | ○ | ○ | ○ | ○ | ○ | ○ | ○ | ○ | ||||||||||||
4 | 고구려무 | ○ | ○ | ○ | △ | |||||||||||||||||
5 | 공막무 | ○ | ○ | ○ | ○ | ○ | ||||||||||||||||
6 | 관동무 | ○ | ||||||||||||||||||||
7 | 광수무 | ○ | ○ | |||||||||||||||||||
8 | 만수무 | ○ | ○ | ○ | ○ | ○ | ○ | ○ | ▽ | ○ | ||||||||||||
9 | 망선문 | ○ | ○ | |||||||||||||||||||
10 | 무고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1 | 무산향 | ○ | ○ | ○ | △ | |||||||||||||||||
12 | 무애무 | ○ | ○ | ○ | ○ | ○ | ○ | ○ | ○ | ▽ | ○ | |||||||||||
13 | 박접무 | ○ | ○ | ○ | △ | |||||||||||||||||
14 | 보상무 | ○ | ○ | ○ | ○ | ○ | ○ | ○ | ○ | ○ | ○ | ○ | ||||||||||
15 | 봉래의 | ○ | ○ | ○ | ○ | ○ | ○ | ○ | ○ | ○ | ○ | ○ | ○ | |||||||||
16 | 사선무 | ○ | ○ | ○ | ○ | ○ | ○ | ○ | ○ | ○ | ○ | |||||||||||
17 | 사자무 | ○ | ○ | ○ | ○ | ○ | ○ | ○ | ||||||||||||||
18 | 선유락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9 | 아박무 | ○ | ○ | ○ | ○ | ○ | ○ | △ | ▽ | ○ | ||||||||||||
20 | 연화무 | ○ | ○ | ○ | ||||||||||||||||||
21 | 영지무 | ○ | ○ | |||||||||||||||||||
22 | 처용무 | ○ | ○ | △ | ○ | |||||||||||||||||
23 | 첨수무 | ○ | ○ | ○ | ○ | △ | ||||||||||||||||
24 | 첩승무 | ○ | ○ | ○ | ○ | ○ | ○ | ○ | ||||||||||||||
25 | 초무 | ○ | ○ | △ | ||||||||||||||||||
26 | 춘광호 | ○ | ○ | ○ | ▽ | |||||||||||||||||
27 | 춘대옥촉 | ○ | ○ | |||||||||||||||||||
28 | 춘앵전 | ○ | ○ | ○ | ○ | ○ | ○ | ○ | ○ | ○ | ○ | ○ | ○ | |||||||||
29 | 침향춘 | ○ | ○ | ○ | ○ | ○ | ||||||||||||||||
30 | 학무 | ○ | ○ | ○ | ○ | ○ | ○ | ○ | ○ | ○ | ○ | |||||||||||
31 | 항장무 | ○ | ○ | ○ | ○ | ○ | ○ | ○ | ○ | |||||||||||||
32 | 향령무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33 | 향발무 | ○ | ○ | △ | ○ | |||||||||||||||||
34 | 헌천화 | ○ | ○ | ○ | ○ | ○ | ○ | ○ | ○ | ○ | ||||||||||||
당 악 정 재 |
35 | 몽금척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36 | 수연장 | ○ | ○ | ○ | ○ | ○ | ○ | ○ | ○ | ○ | ○ | ▽ | ○ | ○ | ||||||||
37 | 연백복지무 | ○ | ○ | ○ | ○ | ○ | ○ | ○ | ○ | ○ | ○ | |||||||||||
38 | 연화대무 | ○ | ○ | ○ | ○ | ○ | ○ | ○ | ○ | ○ | ○ | ○ | ||||||||||
39 | 오양선 | ○ | ○ | ○ | △ | ○ | ||||||||||||||||
40 | 육화대 | ○ | ○ | ○ | ○ | ○ | △ | ○ | ||||||||||||||
41 | 장생보연지무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42 | 제수창 | ○ | ○ | ○ | ○ | ○ | ○ | ○ | ○ | |||||||||||||
43 | 최화무 | ○ | ○ | ○ | ○ | ○ | ○ | |||||||||||||||
44 | 포구락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45 | 하황은 | ○ | ○ | ○ | ○ | △ | ||||||||||||||||
46 | 헌선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현재 전해지는 정재무도홀기 중 무대(舞隊)와 무작(舞作) 등 정재의 핵심 요소를 수록하지 않아서 엄밀한 의미의 정재무도홀기로 보기 어려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진찬정재홀기』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정재홀기』의 두 종을 제외한 정재무도홀기는 모두 스무 책이다. 이 중 장서각 소장본이 아홉 종 열세 책이며, 그 중 두 종은 각각 복본(複本)이 두 책씩이다. 『여령각정재무도홀기』 도서번호 2-2885와 2-2887이 복본이고, 『외진연시무동각정재무도홀기』(한글본) 도서번호 2-2890과 2-2891이 복본이다. 그리고 장서각 소장 『무도홀기』(2-2883)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무법홀기』(고궁2360)가 동일본이다. 따라서 현존 무도홀기는 모두 17종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정재무도홀기에 기록된 정재의 총수는 삼백서른다섯이고, 정재 종류로 본다면 총 마흔여섯 종의 정재가 홀기를 통하여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이 중에는 향악정재인 <무고(舞鼓)>와 당악정재인 <장생보연지무>가 열다섯 차례나 정재무도홀기에 무보가 실렸으나, <망선문>·<영지무>·<춘대옥촉>은 두 차례씩만 수록되었다. 그리고 <처용무>는 『악학궤범홀기』(1705)와 20세기 전반기의 기록으로만 남아 있으며, <관동무>는 고궁박물관 소장 『정재홀기』에 기록이 보이나 이 홀기는 무도홀기로 보기 어려워 결국 <관동무>는 무보(舞譜)로 남겨지지 못하였다. 『악학궤범』(1493)이후 정재 무보와 반주음악 및 구호·치어·창사가 구체적으로 기록된 문헌이 없었으나, 현재까지 남아 전하는 19세기 이후의 정재무도홀기를 통하여 현전 궁중정재의 대다수 종목이 기록으로 남겨져 이를 전승·복원 할 수 있는 기본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재무도홀기는 한국 무용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헌자료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고려사』 「악지」 『악학궤범』 『궁중정재홀기-죽헌』(국립국악원 소장) 『무법홀기』(국립고궁박물관) 『악학궤범홀기』(국립국악원 소장) 『정재무도홀기언해본』(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재무도홀기』(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재무도홀기』(국립국악원 소장) 『정재홀기』(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진찬정재홀기』(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홀기』(국립국악원 소장) 『무도홀기』(장서각 소장) 『사자무항장무무도홀기』(장서각 소장, 2-2884) 『여령각정재무도홀기』(장서각 소장 2-2885, 2-2886, 2-2888) 『외진연시무동각정재무도홀기 신축』(장서각 소장, 2-2889) 『외진연시무동각졍ᄌᆡ무도홀긔 신츅』(장서각 소장, 2-2890) 『헌무의홀기』(장서각 소장 2-2892, 2-2893) 『회작시여령각졍ᄌᆡ무도홀기 신츅』(장서각 소장, 2-2894) 『회작시여령각정재무도홀기 신축』(장서각 소장, 2-289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재무도홀기』(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국립국악원, 『한국음악학자료총서 57집』(국립국악원, 2022) 국립국악원, 『한국음악학자료총서 58집』(국립국악원, 2023) 김영운, 「국립국악원 소장 『정재무도홀기』의 재검토」, 『관재성경린선생 구순기념 국악학논총』, 국립국악고등학교 동창회, 2000.
김영운(金英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