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의 소리를 흉내 낸 일종의 의성어인 구음(口音)을 문자로 기록하여 악기의 연주법을 나타내거나 선율 구성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기보법의 하나
육보란 악기의 소리를 흉내 낸 사람의 목소리 즉 육성(肉聲)을 문자로 기록한 악보라는 의미이다. 악기의 소리를 흉내 낸 구음은 악기에 따라 다르며, 사람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를 기록하여 악보로서의 기능을 하려면 일정한 약속이 필요하다. 즉 악기별로 사용되는 구음이 지시하는 의미가 같아야 악보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육보는 그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전승되어오는 약속에 따른 구음을 기록하여 연주법이나 음높이를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육보 중 관악기의 육보는 매우 드물지만, 현악기인 거문고와 양금·가야금의 육보는 많이 전승되고 있으며, 비파의 육보도 남아 전한다.
『세조실록』 「악보」 서문에 의하면, “향악은 단지 육보로 악보를 삼았다. (중략) 전대에는 음악의 절주나 빠르기의 악보가 없었고, 다만 소리를 묘사하여 육보를 만들어 그 소리를 전하였다. 또 비파·거문고·가야금·적·피리의 악보가 서로 달라 번잡하여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노래의 악보는 있지도 않았다.(鄕樂, 則只以肉譜爲譜. (중략) 前代未有聲音節奏, 疎數緩急之譜, 只有效其聲, 而作肉譜以傳其聲. 且琵琶, 玄琴, 伽倻琴, 笛, 觱篥, 各異其譜, 煩雜難曉. 又未有歌聲之譜.)”라 하였다. 이런 점으로 보아 정간보가 만들어진 세종·세조대 이전에 향악을 위한 악보는 육보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육보의 기보에 사용되는 악기별 구음(口音)이 문헌에 처음 소개된 것은 『악학궤범』(1493)이다. 『악학궤범』에는 거문고 수법을 지칭하는 ᄉᆞ랭·ᄃᆞ랭, 비파의 ᄌᆞ쟁, 가야금의 ᄃᆞ댕 등 연주법을 지칭하는 술어가 소개되었는데, 거문고의 ᄉᆞ랭은 이후 거문고 육보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된 구음이다. 악보에 육보가 처음 보이는 것은 『금합자보(琴合字譜)』(1572)이다. 현악기를 대표한 거문고와 관악기를 대표한 대금[笛], 그리고 장구와 북·노래 등의 악보를 모아 총보(總譜)로 기록한 이 악보에서는 거문고의 구음을 동(冬)·슬(瑟)·당(堂)·사(士)·징(澄)·두(豆)·흥(興) 등의 한자로 표기하였으며, 관악기인 대금[笛]은 여인·너·힌니·니인·너·누·러 등의 한글로 표기하였다. 이 악보에서는 아쟁·해금의 육보가 대금과 같고, 가야금·비파 육보는 거문고와 같다고 하였으며, 육보 기보에 사용되는 다양한 주법 구음을 자세하게 소개·설명하고 있다. 이 악보는 거문고 합자보와 오음약보가 육보와 더불어 병기(倂記)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에 편찬된 『양금신보』(1610)에서는 거문고 육보에 딩·스렝·당·ᄉᆞ랭·다·등·덩·쳥 등의 구음이 한글로 표기되었다. 이 악보는 한 행을 세로로 셋으로 나누고, 가운데 행에 합자보를 기록하고 우측 소행에 음계상의 음고 순서를 나타내는 소위 ‘시용궁상각(時用宮商角)’을, 좌측 소행에 한글 육보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합자보와 육보를 병기(倂記)하는 관습은 19세기 초반까지 대부분 거문고 악보의 전통이 되었으나, 이후 합자보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육보가 거문고 악보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 한자 또는 한글로 표기되는 육보는 19세기 초 무렵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 거문고·가야금·양금의 대표적인 기보법으로 활용되다가 점차적으로 쇠퇴하였다. 이렇게 육보의 쓰임새가 줄어든 것은 19세기 말 함재운(咸在韻) 등이 『세종실록』 「악보」 이래로 사용되던 정간보를 개량하여 음고와 시가 및 각 악기별 주법과 섬세한 장식음까지 표현하게 되면서 새로운 정간보가 육보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거문고·양금·가야금을 제외한 다른 악기의 구음이 육보로 기보되어 전하는 예는 많지 않다. 『금합자보』에서 관악기인 대금[笛]의 구음이 기보된 경우가 가장 주목된다. 그리고 양적으로 많지는 않으나 『역양아운』 <취타(吹打)> 악보에 거문고·양금의 육보와 함께 관악기 구음으로 보이는 “나·ᄂᆞ·너·니·노·늬” 등의 구음이 나란히 병기된 경우가 있고, 『가곡음보』 말미의 <편락(編樂)> 대여음[大念] 불자비[大笛, 피레] 구음(具音) 가락을 “듸 나나 노듸 나 노듸 데로 나 나 지너로 노 나 데로 나 아하 나(이하 생략)”와 같은 구음으로 10점 10박 장단에 별러준 것이 있다. 그리고 초기 합자보인 『금합자보』 말미에는 <비파만대엽(琵琶慢大葉)>이 실려 있는바, 비파합자보·오음약보와 함께 한자로 표기된 비파의 육보가 나란히 병기되었다. 구음은 거문고와 다르지 않다. 독립된 악보로 남아 전하지는 않지만 악보에 구음이 적혀 전하는 악기로는 장구가 있다. 조선 초기의 악보에서는 고(鼓)·요(搖)·편(鞭)·쌍(雙)과 같은 문자로 장구 주법을 표기하였고, 『금합자보』에서는 도형(圖形)을 이용하였으며, 그 이후의 악보들에서는 다양한 부호를 이용하여 장구 주법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런데 『금보정선』에서는 부호 옆에 “㔔·加·㔖·宮”과 같은 기록이 보이는데, 이는 “덩·더·덕·궁”의 장구 구음을 기록한 것이다.
○ 거문고 육보
거문고는 6현 16괘를 가졌으며, 오른손의 술대로 줄을 타거나 뜯어 소리를 내는 악기이지만, 주로 선율을 연주하는 줄은 대현과 유현이다. 따라서 거문고 구음은 왼손의 어느 손가락으로 어느 줄과 어느 괘를 짚는지에 따라 달라지며, 오른손의 술대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오늘날 사용되는 일반적인 거문고 구음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술대로 연주할 때>
대현을 왼손 장지로 짚고 술대로 줄을 타면 : 덩(㔔)
대현을 왼손 식지로 짚고 술대로 줄을 타면 : 둥(㪳)
대현을 왼손 모지로 짚고 술대로 줄을 타면 : 등(登)
유현을 왼손 명지로 짚고 술대로 줄을 타면 : 당(唐)
유현을 왼손 식지로 짚고 술대로 줄을 타면 : 동(同, 冬, 東)
유현을 왼손 모지로 짚고 술대로 줄을 타면 : 징(澄)
문현을 연주한 다음 술대를 들지 않고 유현을 이어 타면 : 쌀갱(乷更, 㐊更)
문현을 장식음처럼 짧게 타고 바로 이어서 유현을 타면 : 싸랭
문현을 연주한 다음 술대를 들지 않고 유현을 거쳐 대현을 이어 타면 : 슬기둥
문현만 연주하면 : 흥(興)
괘상청·괘하청·무현을 한 음 만 연주하면 : 청(淸)
술대를 안쪽으로 들어 마치 줄을 뜯듯이 타면 : 뜰(㐍)
<자출성(自出聲) : 술대를 쓰지 않고, 왼손 손가락으로 줄을 뜯거나 쳐서 소리 냄>
‘당-동’의 동을 자출하면 : 다-로
‘징-동’의 동을 자출하면 : 지-로
‘동-당’의 당을 자출하면 : 도-라
위에 소개한 구음 표기는 자주 쓰이는 표기 방법일 뿐 실제로는 보다 다양한 표기가 활용되었다. 거문고 육보에 사용되는 구음은 악기를 연주하는 방법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이는 주법기보법의 하나이다.
○ 가야금 육보
가야금 육보에 쓰이는 구음은 거문고에 비해서 비교적 단순하다. 이는 가야금 열두 줄 각각 에 붙여진 고유한 구음을 악보로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가야금 악보인 『졸장만록』에는 스렝·징·동·다로·둥·흥·쳥·지랑·ᄯᅳᆯ·더링·달루·스ᄅᆡᆼ·슬ᄀᆡᆼ·덩·랑·힝·지로·다룽·다루 등의 다양한 구음이 사용되었으나, 각 현과의 관계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후 여러 가지의 가야금 육보가 발견되었으나, 그 중 악보에 각 현의 구음이 명확하게 제시된 것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가야금의 줄(저음→고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
동대 가야금보(1813년경) | 괘 | 셜 | 흥 | 둥 | 당 | 동 | 징 | ᄯᅡᆼ | 지 | ᄶᅵᆼ | 칭 | ᄶᅩᆼ |
방산한씨금보(1916) | 淸 | 聽 | 興 | 둥 | 唐 | 同 | 澄 | 倘 | 至 | 徵 | 稱 | 從 |
악서정해(1932) | 淸 | 靑 | 興 | 㪳 | 唐 | 同 | 澄 | 當 | 至 | 澂 | 稱 | 宗 |
현재 국악계에서 사용하는 가야금의 구음은 풍류가야금과 산조가야금이 서로 다르다. 산조가야금의 구음은 위에 제시된 옛 육보의 구음과 거의 같으나,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현행 풍류가야금의 구음은 옛 악보와 다르다. 이는 거문고 구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와 같은 풍류가야금의 구음으로 기록된 육보는 전하지 않는다.
○ 양금 육보
양금의 연주법은 매우 간단하다. 채로 줄을 쳐서 소리내는 주법이 주로 쓰이므로, 양금 육보는 양금 각 현의 구음을 적어 해당 줄에서 나는 음을 나타낸다. 이런 점은 가야금 육보와 함께 주법을 나타내는데서 출발하여 결국은 해당 줄의 음고를 지시하게 된 것이다.
양금은 두 옥타브 반에 이르는 스물한 개의 음을 낼 수 있으나, 좌괘 우편의 높은 음 세 개는 좌괘 좌편의 낮은 음 세 개와 중복된다. 그리고 7음음계로 조율되므로, 5음음계인 우리 음악을 연주할 때 쓰지 않는 음도 있다. 18세기에 양금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 온 후 30여 종의 고악보가 만들어졌으나, 그 중 악보에 각 줄의 구음이 명확하게 제시된 경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양금 음고
악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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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괘 좌측현 | 좌괘 우측현 | 좌괘 좌측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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㣴 | 㣖 | 㣣 | 㣡 | 㣩 | 㣮 | 㣳 | 僙 | 㑀 | 俠 | 㑖 | 㑣 | 㑲 | 㒇 | 㑣 | 㑲 | 㒇 | 黃 | 太 | 夾 | 仲 | |
국립중앙도서관 양금보(2) | 淸 | 聽 | 晴 | 興 | 㪳 | 登 | 應 | 唐 | 同 | 之 | 澄 | 層 | 郞 | 宗 | 倘 | 動 | 至 | 徵 | 稱 | 浪 | 從 |
방산한씨금보 | 淸 | 聽 | 晴 | 興 | 㪳 | 登 | 唐 | 同 | 之 | 澄 | 層 | 倘 | 動 | 至 | 徵 | 稱 | 從 | ||||
성낙범소장양금보 | 淸 | 頌 | 洪 | 興 | 𦒃 | 聲 | 明 | 唐 | 東 | 逢 | 澄 | 層 | 宗 | 總 | 倘 | 動 | 鳳 | 徵 | 稱 | 縱 | 摠 |
양금곡보 | 淸 | 靑 | 聽 | 興 | 㪳 | 登 | 騰 | 唐 | 同 | 之 | 澄 | 倘 | 動 | 至 | 徵 | 稱 | 剩 | 種 | |||
양금여민락보 | 쳥 | 쳥 | 쳥 | 흥 | 둥 | 등 | 당 | 동 | 지 | 징 | 칭 | ᄃᆞᆼ | 동 | 디 | 딩 | 팅 | 죵 | ||||
淸 | 淸 | 淸 | 興 | 㪳 | 騰 | 唐 | 東 | 芝 | 澄 | 層 | 倘 | 同 | 至 | 徵 | 稱 | 宗 | |||||
양금주책 | 淸 | 聽 | 興 | 𦒃 | 登 | 唐 | 東 | 芝 | 澄 | 層 | 倘 | 動 | 至 | 徵 | 稱 | 從 | |||||
역양아운 | 淸 | 청 | 興 | 㪳 | 㔔 | 唐 | 同 | 之 | 澄 | 稱 | 堂 | 東 | 至 | 徵 | 層 | 宗 | |||||
일사금보 | 淸 | 聽 | 晴 | 興 | 㪳 | 騰 | 唐 | 東 | 摯 | 澄 | 層 | 倘 | 動 | 至 | 徵 | 稱 | 鐘 | ||||
장금신보 | 淸 | 聽 | 興 | 𦒃 | 登 | 唐 | 東 | 芝 | 澄 | 層 | 倘 | 動 | 至 | 徵 | 稱 | 從 | |||||
창하유필 | 청 | 청 | 청 | 흥 | 둥 | 덩 | 디 | 당 | 동 | 지 | 징 | 당 | 동 | 디 | 당 | 동 | 디 | 딩 | 팅 | 찌 | 종 |
철현금보 | 淸 | 興 | 㪳 | 登 | 唐 | 東 | 之 | 澄 | 層 | 倘 | 動 | 至 | 徵 | 稱 | 宗 | ||||||
향율율보 | 淸 | 晴 | 䝼 | 興 | 𦒃 | 登 | 層 | 唐 | 東 | 志 | 澄 | 秤 | 致 | 宗 | 堂 | 同 | 至 | 徵 | 稱 | 治 | 從 |
협률대성 | 淸 | 靑 | 興 | 㪳 | 登 | 唐 | 同 | 之 | 澄 | 層 | 倘 | 動 | 至 | 徵 | 稱 | 種 |
육보는 악기의 소리를 흉내 낸 구음을 문자로 기록하여 악기의 연주법을 나타내는 기보법이다. 가야금이나 양금의 경우는 구음이 특정 음고와 연결되어 마치 음고기보법처럼 활용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구음은 관악기는 주로 ㄴ과 ㄹ계통의 자음을 사용하고, 현악기는 ㄷ과 ㅈ계통의 자음을 주로 사용한다. 실제 음악 현장에서 구음창(口音唱)을 통하여 효율적인 전수(傳受) 활동이 가능하다는 장점에 힘입어, 조선 중기 이후 대부분의 거문고 악보에서 육보는 합자보와 나란히 병기되면서 중요한 기보법으로 활용되었다. 19세기에 접어들어서는 합자보에 비하여 기록이 간단하고 쉽게 익힐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하여, 병용되던 합자보를 밀어내고 육보만으로 음악을 기보하게 되었으며 거문고 이외에 양금과 가야금의 기보에도 대표적인 기보법으로 활용되었다.
국립국악원,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2·7·14·15·16·17·18·19·22·25·31·32·33·34·39·40·54·55집, 1980~2020.
김영운(金英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