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연(鴻門宴)에서 항장의 칼을 항백의 소매로 막았다고 해서 건무(巾舞)라고 지어진 춤
건무는 홍문연(鴻門宴)에서 칼을 소매로 막은 춤에서 유래했다. 초(楚)나라 항우와 한(漢)나라 패공이 패권을 다툴 때 홍문(鴻門)에서 열린 연회에서 패공을 치기 위해 항장이 칼춤을 추자, 패공의 신하 항백이 옷소매로 막으며 “공께서 그러지 마시오[公莫]”라고 했다. 이 고사를 소재로 한나라에서 건무(巾舞)가 추어졌으며, 공막무라 하기도 했다.
홍문연 고사는 고려와 조선에 알려져 문사들에게 회자되었고, 조선후기에 선천과 안주의 교방에서 홍문연 고사를 연희한 <항장무>가 추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순조(純祖, 1800~1834) 때 궁중잔치 진작(1828)에서 공막무가, 궁중잔치 진찬(1829)에서 검기무가 처음 추어졌다. 두 잔치를 기록한 의궤의 정재악장(呈才樂章)에서 공막무와 검기무를 설명하기를 “잡무곡에서는 건무라고 하였다. 항장이 칼춤을 추자 항백이 소매로 막으며 항장에게 “그대는 그러지 마시오[公莫]”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였다. 뒤에는 검무가 되었는데, 향악을 사용하였다. [雜舞曲云巾舞也. 項莊舞劍, 項伯以袖隔之, 若語莊云公莫. 後爲劍舞, 鄕樂用之.]”라고 했다. 여기서 잡무곡은 지방 교방에서 추는 연희적 성격이 있는 연행물을 말하며, 항장과 항백의 공막을 설명했다. 항장무를 언급하는 듯하지만, ‘건무(巾舞)’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건무가 항장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궁중에서 추어진 공막무와 검기무는 수건이 아니라 검기(劍器)를 들고 추었다. 건무는 항장무와 공막무와 검기무의 유래를 설명할 때 언급되었을 뿐이며, 궁중에서 추어지지는 않았다.
『순조무자진작의궤』 『순조기축진찬의궤』 이유준, 『몽유연행록』 백은영, 「항장무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왕홍원, 「중국 검기무에 대한 연구 : 기원전 21세기부터 기원 907년」, 중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4.
김영희(金伶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