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목적ㆍ시기1915년 3월 26일 경성 훈정동에 경성구파배우조합이 처음 설립될 당시 참여한 남녀 배우 28명은 본래 광무대와 연흥사 소속이었다. 조합장은 장재옥, 부조합장은 김인호(金仁鎬, ?~?)와 김봉이(金鳳伊, ?~?), 기타 총무는 조양운(趙良云, ?~?)과 한문필(=한성준, 1874~1942)이 맡았으며, “아무쪼록 정신을 차려 남의 치욕을 면하고 잘 수신하여 감이 조합 발전의 기초”(『매일신보』 1915.4.1.)라고 설립의 다짐을 밝혔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조합장을 강경수(姜敬秀. ?~?), 총무를 조진영(趙鎭榮, ?~?)과 박상도(朴尙道, ?~?)로 교체하고 인원도 30명으로 확충하여 조직을 정비하였으나, 주요 임원으로 참여한 판소리 명창들은 여전히 조합 차원의 단체 공연보다는 개별적인 공연 활동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였다.○역사적 변천경성구파배우조합 차원의 첫 조직적인 공연 활동은 1915년 일제가 시정 5년을 기념하기 위해 경복궁에서 개최한 조선물산공진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경성구파배우조합은 여러 전통 공연예술 단체를 통합해 ‘조선구파배우조합(朝鮮舊派俳優組合)’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하였으며,
〈심청가〉ㆍ
〈수궁가〉ㆍ〈영남루〉ㆍ
〈춘향가〉ㆍ〈삼남교자〉ㆍ
〈박타령〉ㆍ〈황공자극〉ㆍ〈효양가〉ㆍ〈삼국지연극〉ㆍ〈수호지연극〉ㆍ〈금태자연의〉ㆍ〈은세계〉ㆍ〈황학루이삼극〉 등의 창극, 그리고 판소리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조선물산공진회 이후인 1916년 2월부터 경성구파배우조합은 판소리 명창들의 공연 활동을 시작으로 ‘종로 야시’ 개장의 홍보행렬에 참여하고, 신파극단인 혁신단과 함께 단성사에서 장기 공연을 전개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주었다. 혁신단과의 합동 공연 이후 경성구파배우조합은 구극과 신극을 함께 공연하는 방식을 이어가는 한편, ‘신구극개량단’을 조직하여 〈장화홍련전〉ㆍ〈사씨남정기〉ㆍ〈미인도〉 등의 작품을 선보였으나 후에는 ‘신파개량단’의 활동만 확인되기에 이른다. 여러 정황상 ‘신파개량단’은 ‘신구극개량단’과 별개로 조직된, 신파 연극인을 위한 단체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1910년대 후반에도 전통 공연예술은 여러 극장에서 연행을 지속했지만, 경성구파배우조합으로서의 공식적인 활동은 점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구파배우조합 강경수 일행의 구파연극”(『매일신보』 1919.10.10), “이동백ㆍ심정순ㆍ김창룡 삼씨를 위시하야 구파조합원 일동”(『매일신보』 1925.7.29.) 등의 기사 문구에서 볼 수 있듯, 그 명칭은 존속되었으나 과거 조직에 대한 상징성을 나타내는 정도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음악)활동『축시정오주년기념물산공진회 조선구파연극 광고』에 수록된 ‘조선구파배우조합’의 창극 공연 목록을 살펴보면, 〈심청가〉ㆍ〈수궁가〉ㆍ〈춘향가〉ㆍ〈박타령〉은 전래의 판소리 서사에 기반한 작품이며, 〈은세계〉는 1908년에 초연되었던 창작 창극을 재연한 것이다. 〈영남루〉ㆍ〈삼남교자〉ㆍ〈황공자극〉ㆍ〈효양가〉는 1910년대에 장안사 등지에서 ‘심정순 일행’ 또는 ‘김재종 일행’이 공연했던 창작 창극 작품이고, 〈김태자연의(金太子演義)〉는 고소설 『육미당기(六美堂記)』를 모본으로 한 신소설 『김태자전(金太子傳)』을 다시 각색한 창극 작품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삼국지연극〉ㆍ〈수호지연극〉ㆍ〈황학루이삼극〉은 그 제목에서부터 중국 창희(唱戱) 또는 희곡(戱曲)의 영향이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