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구파배우조합(朝鮮舊派俳優組合), 구파배우조합(舊派俳優組合)
일제강점기 경성 훈정동에서 판소리 명창 김창환(金昌煥, 1855~1937), 이동백(李東伯, 1866~1949) 등을 주축으로 하여 남녀 전통음악인 30여 명이 결성한 조직
일제강점기인 1915년 3월 26일 경성 훈정동에서 판소리 명창 김창환ㆍ이동백 등이 중심이 되어, 남녀 전통음악인 30여 명이 경성구파배우조합(京城舊派俳優組合)을 설립하였다. 조합 차원의 교육 및 공연 활동은 기존의 판소리와 창극을 전승하고 활성화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조합 소속 배우들은 신극 또는 신파극과의 교류를 통해 당대 연극 문화의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20세기 초 공연예술 환경의 변화에 따라 광무대ㆍ장안사ㆍ단성사 등의 사설극장이 전통 공연예술 중심의 공연장으로 활발하게 사용되면서 해당 극장 주관하에 공연이 실행되었으나, 신연극ㆍ영화 등이 도입되는 1910년대 중순을 기점으로 기존의 판소리나 창극 공연이 축소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연행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가 경성구파배우조합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또한, 기생조합 연주회 류의 공연이 점차 확대되는 상황에 위기의식을 느낀 남성 전통 예술인들이 경성구파배우조합을 조직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로부터 광교조합ㆍ다동조합ㆍ한남조합 등 기생조합과 함께 경성구파배우조합이 전통 예술인 조직의 양대 축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경성구파배우조합의 결성이 전통 예술인의 내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일제가 시정 5주년을 기념해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홍보할 목적으로 준비했던 조선물산공진회에서 여흥을 담당하기 위해 조직되었다는 것인데, 실제 단체의 첫 공식 활동이 이 공진회였다는 사실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설립 목적ㆍ시기 1915년 3월 26일 경성 훈정동에 경성구파배우조합이 처음 설립될 당시 참여한 남녀 배우 28명은 본래 광무대와 연흥사 소속이었다. 조합장은 장재옥, 부조합장은 김인호(金仁鎬, ?~?)와 김봉이(金鳳伊, ?~?), 기타 총무는 조양운(趙良云, ?~?)과 한문필이 맡았으며, “아무쪼록 정신을 차려 남의 치욕을 면하고 잘 수신하여 감이 조합 발전의 기초”(『매일신보』 1915.4.1.)라고 설립의 다짐을 밝혔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조합장을 강경수(姜敬秀. ?~?), 총무를 조진영(趙鎭榮, ?~?)과 박상도(朴尙道, ?~?)로 교체하고 인원도 30명으로 확충하여 조직을 정비하였으나, 주요 임원으로 참여한 판소리 명창들은 여전히 조합 차원의 단체 공연보다는 개별적인 공연 활동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역사적 변천 경성구파배우조합 차원의 첫 조직적인 공연 활동은 1915년 일제가 시정 5년을 기념하기 위해 경복궁에서 개최한 조선물산공진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경성구파배우조합은 여러 전통 공연예술 단체를 통합해 ‘조선구파배우조합(朝鮮舊派俳優組合)’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하였으며, 〈심청가〉ㆍ〈수궁가〉ㆍ〈영남루〉ㆍ〈춘향가〉ㆍ〈삼남교자〉ㆍ〈박타령〉ㆍ〈황공자극〉ㆍ〈효양가〉ㆍ〈삼국지연극〉ㆍ〈수호지연극〉ㆍ〈금태자연의〉ㆍ〈은세계〉ㆍ〈황학루이삼극〉 등의 창극, 그리고 판소리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조선물산공진회 이후인 1916년 2월부터 경성구파배우조합은 판소리 명창들의 공연 활동을 시작으로 ‘종로 야시’ 개장의 홍보행렬에 참여하고, 신파극단인 혁신단과 함께 단성사에서 장기 공연을 전개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주었다. 혁신단과의 합동 공연 이후 경성구파배우조합은 구극과 신극을 함께 공연하는 방식을 이어가는 한편, ‘신구극개량단’을 조직하여 〈장화홍련전〉ㆍ〈사씨남정기〉ㆍ〈미인도〉 등의 작품을 선보였으나 후에는 ‘신파개량단’의 활동만 확인되기에 이른다. 여러 정황상 ‘신파개량단’은 ‘신구극개량단’과 별개로 조직된, 신파 연극인을 위한 단체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1910년대 후반에도 전통 공연예술은 여러 극장에서 연행을 지속했지만, 경성구파배우조합 ‘구파’로서의 공식적인 활동은 점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구파배우조합 강경수 일행의 구파연극”(『매일신보』 1919.10.10), “이동백ㆍ심정순ㆍ김창룡 삼씨를 위시하야 구파조합원 일동”(『매일신보』 1925.7.29.) 등의 기사 문구에서 볼 수 있듯, 그 명칭은 존속되었으나 과거 조직에 대한 상징성을 나타내는 정도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음악)활동 『축시정오주년기념물산공진회 조선구파연극 광고』에 수록된 ‘조선구파배우조합’의 창극 공연 목록을 살펴보면, 〈심청가〉ㆍ〈수궁가〉ㆍ〈춘향가〉ㆍ〈박타령〉은 전래의 판소리 서사에 기반한 작품이며, 〈은세계〉는 1908년에 초연되었던 창작 창극을 재연한 것이다. 〈영남루〉ㆍ〈삼남교자〉ㆍ〈황공자극〉ㆍ〈효양가〉는 1910년대에 장안사 등지에서 ‘심정순 일행’ 또는 ‘김재종 일행’이 공연했던 창작 창극 작품이고, 〈김태자연의(金太子演義)〉는 고소설 『육미당기(六美堂記)』를 모본으로 한 신소설 『김태자전(金太子傳)』을 다시 각색한 창극 작품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삼국지연극〉ㆍ〈수호지연극〉ㆍ〈황학루이삼극〉은 그 제목에서부터 중국 창희(唱戱) 또는 희곡(戱曲)의 영향이 짐작된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판소리 대명창을 주축으로 하여 설립된 경성구파배우조합은 1920년 이전까지 활동을 이어나감으로써, 1910년대 중ㆍ후반에 전개된 판소리와 창극이 이후 시기까지 지속되도록 기여했다는 음악사적 의의가 인정된다. 또한, 조합 소속의 남녀 배우들이 기존에 자신이 연행해 왔던 전통 공연예술에 공연 범주를 국한하지 않고, ‘신구극개량단’ 활동 등을 통해 새로운 양식적 시도 및 새 작품 창작의 성과를 보여주었다는 창극사 또는 연극사적 의의도 확인된다. 한편, 경성구파배우조합 설립 당시 주도적으로 참여한 판소리 대명창들의 출신 배경으로 볼 때, 전통사회의 재인청(才人廳) 또는 신청(神廳) 조직을 계승하였다는 의미도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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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宋美敬)
송미경(宋美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