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성은 ‘책을 읽는 소리’를 말한다. 주로 한문으로 된 경전, 산문, 한시 등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을 가리키며,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한문을 배우고 익히는 데 가장 보편적인 방법으로 활용되었다. 조선 시대 문집에 기록된 내용에 의하면, 독서성은 장중하고, 우렁차며, 침착하고 분명해야 한다. 글자의 뜻과 구절의 의미를 새기면서 읽어야 하기 때문에 음악적인 기교보다는 글의 내용을 명확히 드러내는 데 무게를 둔다. 독서성의 음악적 내용은 개인마다 편차가 크다. 대개 한 옥타브 내외의 음역(range)의 단순한 선율로 되어 있고, 경토리나 메나리토리 선율이 많이 나타난다. 한편, 한시는 고정된 선율형에 노랫말만 바꾸는 방식으로 노래한다. 독서성은 문인과 지식인이 향유했던 보편적인 음악 문화로, 조선 후기 전문 음악인들의 시창, 율창, 송서 등 새로운 음악 갈래에 영향을 주었다.
조선 시대에도 소리 내어 글을 읽었다는 다양한 기록이 보인다. 이황(李滉, 1501~1570)의 『퇴계전서(退溪全書)』(1600)에는 “단정히 앉아서 마음을 수습한 다음 소리를 내어 읽고 외우되, 읽는 횟수를 많이 쌓으면 난숙해진 나머지 의리가 저절로 남김없이 해석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글을 익히는 일이다(端坐收心 出聲讀誦 多積遍數 爛熟之餘 義理自至於融釋 是爲習之之事)”라는 내용이 있다. 한편,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는 속담도 서당에서는 통상 소리 내어 글을 읽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독서성’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예로는, 이정형(李廷馨, 1549~1607)의 『동각잡기(東閣雜記)』 상권에 “태종은 매일 노력하면서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신덕왕후(神德王后, 1356~1396)가 매일 태종의 독서성(讀書聲)을 듣고서 말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낳지 않았는가!’라고 하였다(太宗惟日孜孜, 讀書不倦. 神德王后每聞太宗讀書聲曰, ‘何不爲吾出乎!’)”라는 기록이 보이고, 김창업(金昌業, 1658~1721)의 『노가재연행일기(老稼齋燕行日記)』 7권에도 “길가에 독서성(讀書聲)이 들렸다. 말에서 내려 그 집에 들어가니 열여덟 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읽고 있는 책은 모두 경서(經書)였다(路傍有讀書聲. 下馬入其家, 有羣兒十八人, 其書皆經書)”라는 기록이 보인다.
근대 이후 제도권 교육에서 한문 교과의 비중은 크게 낮아졌고, 자연스럽게 성독 문화도 약화되었다. 한문학을 전공하는 학자들도 소리 내어 읽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만 전통 방식으로 한학을 공부하는 유학자들은 중요한 학습 수단으로 독서성을 활용하고 있고, 향교와 서당 등을 통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독서성과 관련된 용어로는 성독(聲讀), 염서(念書), 독경(讀經), 송경(誦經) 등의 용어들이 나타난다. 이중 염서는 유가의 경전 등을 읽는 것을 뜻하는 용어로 옛 문헌에 보이고, 독경(讀經)・송경(誦經)은 대체로 종교적인 문헌(불경, 도교 경전 등)을 읽거나 외우는 것을 가리킨다. 한문 경전이나 시를 소리 내어 읽는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로는 성독이 가장 널리 쓰이고, 성독하는 ‘소리’, ‘음악’을 독서성이라 하여 구분한다. 그 밖에 송서(誦書)・율창(律唱)・시창(詩唱)이 있는데, 이는 한문이나 한글로 된 산문, 한시 등을 전문 음악인들이 세련되게 부르는 소리로 구분하여 사용되고 있다.
독서성은 ‘줄글’과 ‘귀글’로 구분된다. 줄글은 경전이나 문집에 있는 산문을 가리키고, 귀글은 5언이나 7언으로 된 한시 또는 4언으로 정형화된 운문을 말한다. 줄글의 소재는 『명심보감(明心寶鑑)』, 『소학(小學)』, 사서(四書; 대학・중용・논어・맹자) 등의 경전과 『고문진보(古文眞寶)』 후편 등이다. 귀글은 한시를 모아 엮은 『당음(唐音)』, 오언절구로 된 『추구(推句)』, 사자성어로 된 『사자소학(四字小學)』, 한시가 수록되어 있는 『고문진보』 전편 등을 포함한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봄・가을에는 예와 악을 가르치고, 겨울・여름에는 시와 서를 가르친다(春秋 敎以禮樂 冬夏 敎以詩書)”라고 기록된 것처럼, 대개 겨울에는 경전을 공부하고 여름에는 하과(夏課)라 하여 시를 짓고 읽는 것이 관례였다. 지금도 여름에 돌아가며 시를 짓고 잘 짓지 못하면 벌칙(벌주)을 주는 등 하과의 풍습을 이어가는 서당을 찾을 수 있다.
박정경(朴正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