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으로 된 산문이나 시를 가락에 얹어 읽는 소리
독서성은 ‘책을 읽는 소리’를 말한다. 주로 한문으로 된 경전이나 산문, 한시를 소리 내어 읽는 것을 가리키며, 한문을 배우고 익히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으로 활용되었다. 조선시대 문집에 기록된 내용에 의하면, 독서성은 장중하고, 우렁차며, 침착하고 분명해야 한다. 글자의 뜻과 구절의 의미를 새기면서 읽어야 하기 때문에 음악적인 기교보다는 글의 내용을 명확히 드러내는 데 무게를 둔다. 독서성의 음악적 내용은 개인마다 편차가 크다. 대개 한 옥타브 내외의 음폭의 단순한 선율로 되어 있고, 경토리나 메나리토리 선율이 많이 나타난다. 한편, 한시는 고정된 선율형에 노랫말만 바꾸는 방식으로 노래한다. 독서성은 문인・지식인이 향유했던 보편적인 음악문화로, 조선 후기 전문 음악인들의 시창과 율창, 송서 등 새로운 음악 갈래에 영향을 주었다.
소리 내어 책을 읽는 것은 동서양을 통틀어 보편적인 공부법이었다. 로마의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의 『고백록』에는 암브로시우스가 묵독(默讀)을 하는 모습을 이례적인 것으로 적었다. 이를 통해 당시에는 큰 소리로 책을 읽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대학(大學)』(B.C.300 무렵)의 「독대학법(讀大學法)」 중에 ‘아직 입에 오르지 않으면 모름지기 입에 오르도록 하라[未上口時, 須敎上口]’는 구절이 있어 성독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간서법(看書法)」 下에도 ‘무릇 책을 읽을 때는 우선 소리 내어 읽어야 하며 단지 생각만 하지 말아야 한다. 소리 내어 읽으면 마음 속이 느긋해져서 의리가 저절로 나온다. 내가 처음 공부할 때도 역시 그렇게 했을 뿐이며, 다른 방법은 없었다[大凡讀書, 且要讀, 不可只管思, 口中讀, 則心中閑, 而義理自出, 某之始學, 亦如是爾, 更無別法]’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 독서성의 유래는 신라 시대로 소급해 볼 수 있다. 『삼국사기』권46, 열전 6 설총편에, “설총은 바탕이 총명하고 예민하여 나면서부터 도리와 학술을 알아 방언(方言)으로 구경(九經)을 읽어 후생을 가르쳤는데, 지금까지도 학자들이 그를 모범으로 삼는다[薛聰: 聰性明銳, 生知道術, 以方言讀九經, 訓導後生, 至今學者宗之]”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설총은 우리말 조사나 어미에 해당하는 토(吐)를 붙여 한문을 읽는 석독구결(釋讀口訣)을 남겼는데, 이를 통해 한문을 소리내어 읽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석독구결은 충청남도 서산군 문수사의 금동여래좌상 복장물 속에서 나온 고려시대의 『구역인왕경』에서도 발견되어 성독의 전통이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소리 내어 글을 읽었다는 다양한 기록이 보인다. 이황(李滉, 1501~1570)의 『퇴계전서(退溪全書)』(1600)에는 “단정히 앉아서 마음을 수습한 다음 소리를 내어 읽고 외우되, 읽는 횟수를 많이 쌓으면 난숙해진 나머지 의리가 저절로 남김없이 해석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글을 익히는 일이다[端坐收心 出聲讀誦 多積遍數 爛熟之餘 義理自至於融釋 是爲習之之事]”라는 내용이 있다. 한편,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도 서당에서는 통상 소리 내어 글을 읽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독서성’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예로는 “태종은 매일 노력하면서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신덕왕후가 매일 태종의 독서성(讀書聲)을 듣고서 말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낳지 않았는가!’라고 하였다[太宗惟日孜孜, 讀書不倦. 神德王后每聞太宗讀書聲曰, ‘何不爲吾出乎!’]”(이정형(李廷馨, 1549~1607)의 『동각잡기(東閣雜記)』 上), “길가에 독서성(讀書聲)이 들렸다. 말에서 내려 그 집에 들어가니 열여덟 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읽고 있는 책은 모두 경서(經書)였다[路傍有讀書聲. 下馬入其家, 有羣兒十八人, 其書皆經書]”(김창업(金昌業, 1658~1721)의 『노가재연행일기(老稼齋燕行日記)』 7권) 등이 있다.
근대 이후 제도권 교육에서 한문 교과의 비중은 크게 낮아졌고, 자연스럽게 성독 문화도 약화되었다. 한문학을 전공하는 학자들도 소리 내어 읽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만 전통 방식으로 한학을 공부하는 유학자들은 중요한 학습 수단으로 독서성을 활용하고 있고, 향교와 서당 등을 통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독서성과 관련된 용어로는 성독(聲讀), 염서(念書), 독경(讀經), 송경(誦經) 등의 용어들이 나타난다. 이중 염서는 유가의 경전 등을 읽는 것을 뜻하는 용어로 옛 문헌에 보이고, 독경(讀經), 송경(誦經)은 대체로 종교적인 문헌(불경, 도교 경전 등)을 읽거나 외우는 것을 가리킨다. 한문 경전이나 시를 소리 내어 읽는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로는 성독이 가장 널리 쓰이고, 성독하는 ‘소리’, ‘음악’을 독서성이라 구분한다. 그밖에 송서(誦書), 율창(律唱), 시창(詩唱)이 있는데, 이는 한문이나 한글로 된 산문, 한시 등을 전문 음악인들이 세련되게 부르는 소리로 구분하여 사용되고 있다. 독서성은 ‘줄글’과 ‘귀글’로 구분된다. 줄글은 경전이나 문집에 있는 산문을 가리키고, 귀글은 5언이나 7언으로 된 한시 또는 4언으로 정형화된 운문을 말한다. 줄글의 소재는 『명심보감(明心寶鑑)』, 『소학(小學)』사서(四書; 대학・중용・논어・맹자) 등의 경전과 『고문진보(古文眞寶)』 후편 등이다. 귀글은 한시를 모아 엮은 『당음(唐音)』, 오언절구로 된 『추구(推句)』, 사자성어로 된 『사자소학(四字小學)』, 한시가 수록되어 있는 『고문진보』 전편 등을 포함한다. 『예기(禮記)』 「王制」에 ‘봄・가을에는 예와 악을 가르치고, 겨울・여름에는 시와 서를 가르친다[春秋 敎以禮樂 冬夏 敎以詩書]’라고 기록된 것처럼, 대개 겨울에는 경전을 공부하고 여름에는 하과(夏課)라 하여 시를 짓고 읽는 것이 관례였다. 지금도 여름에 돌아가며 시를 짓고 잘 짓지 못하면 벌칙(벌주)을 주는 등 하과의 풍습을 이어가는 서당을 찾을 수 있다.
독서성의 음악적 요소를 문헌 기록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퇴계 이황의 제자인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은 『퇴계선생언행록(退溪先生言行錄)』에 “신유년(1561) 겨울, 선생님께서는 도산의 완락재에 계셨다. 닭이 울면 일어나셔서 반드시 장중한 목소리로 글을 한동안 읽으셨다[辛酉冬 先生居陶山玩樂齋 雞鳴而起 必莊誦一遍]”고 하였고,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의 『학봉집(鶴峯集)』 속집(續集) 제5권에는 “선생이 글을 읽을 때는 단정히 앉아서 우렁차게 읽었으며, 글자마다 그 뜻을 찾고 구절마다 그 의미를 찾았다[先生讀書, 正坐莊誦, 字求其訓, 句尋其義].”라는 내용이 있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사소절(士小節)에는 “글 읽는 소리는 침착하고 분명해야 한다. 만일 남의 이목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억지로 좋은 소리를 낸다면 글 뜻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녀와 악공이 유행가나 타령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고 성독의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종합해 보면, 독서성은 장중하고, 우렁차며, 침착하고 분명해야 한다. 또한 글자의 뜻과 구절의 의미를 새기면서 읽어야 하기 때문에 음악적인 기교보다는 글의 내용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글을 읽을 때, 처음에는 스승이 읽는 소리를 따라 읽으며 뜻을 새기고, 문리를 트고 자연스럽게 토(吐)를 달아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되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독을 한다. 따라서 독서성의 음악적 특징이나 가창 방식은 개인의 음악적 기량에 따라 표현되며, 때로는 해당 지역 민요의 특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줄글은 대체로 한 옥타브 내외의 음역(range)에 비교적 단순한 선율로 이루어져 있다. Sol-La-do-re-mi의 5음 음계에서 3음~5음을 활용한다. 대개 경토리나 메나리토리 선율이 주로 보이지만, 독서성과 지역의 음악 어법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글을 읽는 것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음의 변화가 적고 한 음을 지속하는 선율형이 많이 나타난다.
귀글을 읽을 때는 ‘서당식으로’ 성독하는 방식과 음악적 요소를 넣어 노래하듯 ‘멋스럽게’ 부르는 방식이 있다. 서당식으로 성독할 때는 대개 1자 1음 혹은 1자 2음으로 박이 규칙적이며 담담하게 읽는다. 한자에 한글 토를 단 부분은 빠르게 읽어 박자를 맞춘다. 음 구성은 Sol-do-re-mi의 4음 내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속도는 가창자에 따라 유동적이나, 단순한 방식은 다소 빠르고, 멋스럽게 부르는 방식은 조금 느리고 한 글자를 여러 음에 걸쳐 노래하기도 한다. 두 방식 모두 어느 정도 고정된 선율이 있고 노랫말만 바꾸어 부르는데, 이점은 시조창과 유사한 특징이다.
독서성은 전통사회에서 사대부・지식인 계층이 향유해 온 음악이다. 동아시아의 보편 문자였던 한자를 우리 어법에 맞게 토를 달아 해석하고 읽는 오랜 학문적 전통을 유지하고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다. 또한 단순히 글을 읽는 행위를 넘어 말과 음악의 결합으로 형성된 문학적・음악적 행위이며, 정해진 양식이나 규칙이 없이 개인의 음악적 역량과 선택에 의해 표현되는 창작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독서성은 조선 후기 전문 음악인들의 시창과 율창, 송서 등 새로운 음악 갈래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예술사적으로도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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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경(朴正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