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소장 거문고
충남 예산 수덕사 박물관인 근역성보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고려 공민왕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거문고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수덕사 소장 거문고는 뒷판에 이조묵((李祖默, 1792~1840)이 정유년(1837)에 새긴 찬문(撰文)에 의하여 공민왕(恭愍王, 1353~1419)이 만들었으며 후에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또한, 거문고 뒷판에 만공(滿空, 1871~1946) 스님의 게송(偈頌)이 적혀 있다. 유물로 전해지는 거문고 가운데 유일하게 현침과 괘 사이에 대모(玳瑁)가 붙여져 있다. 또한 현과 부들이 만나는 학슬(鶴膝)에 향낭(香囊)을 달아 놓은 것도 특이하다. 재질은 오동나무이며, 가로 164cm, 너비 20cm의 거문고이다.
수덕사 소장 거문고 뒷판에는 이 악기의 내력을 알 수 있는 찬문(撰文)이 새겨져 있다. 玄琴富如蒲唯環 爲至寶者 거문고가 청포뿌리만큼 넉넉하지만 보배로 삼을 만하다. 恭愍王得神桐而製此耳 공민왕이 신령스러운 오동을 얻어 이것을 만들었으니 其後治隱珍藏而名賢高士無不爭奏 聲韻之淸爽特餘事歟 그후 야은이 보배롭게 여겨 잘 간직하고 명현고사들이 그 맑고 상쾌한 소리와 음운을 특이한 것으로 삼아서 다투어 켜지 않음이 없었다. 澤堂銘汾西等惜剛半岩滅足證世之質造上可幸也 택당 이식 등과 더불어 진실로 아꼈으니 이제 거의 마멸되었으나 그 짙은 세간에 증명하기 충분하여 참으로 다행스럽게 여기는 바이다. 丁酉竹碎日六橋撰仍題 정유년에 대를 쪼개는 날 육교는 이에 적어 찬한다. 이 찬문에 의하면, 공민왕(1353~1419)이 만들었으며 고려 후기의 문신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에게 전해졌다고 이조묵((李祖默, 1792~1840)이 정유년(1837)에 새겼 놓은 것이다. 또한, 불기 2964년(1937년) 거문고 뒷판에 서각된 만공스님의 불교적 게송(偈頌)의 글이 적혀 있다. 一彈云是甚 曲, 是體玄曲也 한번퉁기고 이르노니 이는 무슨 곡조인가? 이는 체의 현현한 곡이로다. 一彈云是甚 曲, 是句玄曲也 한번퉁기고 이르노니 이는 무슨 곡조인가? 이는 일구의 현현한 곡이로다. 一彈云是甚 曲, 是玄玄曲也 한번퉁기고 이르노니 이는 무슨 곡조인가? 이는 현현하고 현현한 곡이로다. 一彈云是甚 曲, 是石女心中劫外曲也 한번퉁기고 이르노니 이는 무슨 곡조인가? 이는 돌장승의 마음 가운데 겁밖의 곡이로다. 아하. 湖西 崇德山 金仙洞 小林草堂 佛紀 二九六四年 호서 덕숭산 금선동 소림초당에서 불기 2964년 만공(滿空, 1871~1946) 스님은 한국 불교사의 중흥 시조로 추앙받고 있는 경허 스님의 제자로서 이론과 사변을 철저히 배제하고 무심(無心)의 태도로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간화선법(看話禪法)을 채택하여 제자들을 가르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설에 의하면 길재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조선 왕실의 보물로 전승되어 오다가 대원군이 소장하였다고 한다. 만공 스님의 제자인 수덕사 제3대 방장 원담 스님 등에 의하면 수덕사의 거문고는 만공스님께서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 공으로부터 하사받은 것으로 전해지는 거문고이다. 만공스님의 거문고에 대한 각별한 사랑은 그 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전하고 있으며 달밝은 밤이면 계곡에 나가 거문고를 탔다고 한다. 이 거문고의 마지막 소장자였던 만공스님이 1946년 입적하자 노승들에 의해 수덕사의 산방(山房)인 정혜사에 비밀리에 보관되었다. 1993년 최인호 소설가의 장편소설 『길없는 길』에 이 거문고에 대한 이야기가 일반인들에게 알려졌으며. 1998년 1월 수덕사에 경허, 만공선사의 유품을 중심으로 한 근역성보관이 개관되면서 이 거문고가 공개 전시되고 있다.
○ 규격 길이 164cm, 너비 20cm ○ 소장처 수덕사(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 제작연대 및 제작자 사항 이조묵이 정유년(1837년)에 새긴 찬문에 의하면, 공민왕(1353~1419)이 만들었으며, 후에 야은 길재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이 거문고는 조선후기 흥선대원군으로부터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에게 전해졌으며 1930년대 무렵 만공스님이 의친왕으로부터 받은 일화들이 전해 지고 있다, ○ 구성 및 내용 거문고의 악기 체계의 기본인 앞판의 좌단(坐團), 현침(絃枕), 대모(玳瑁), 학슬(鶴膝), 봉미(鳳尾)와 뒷판의 돌괘(軫棵), 3개의 울림구명(共鳴口), 운족(雲足)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문현(文絃), 유현(遊絃), 대현(大絃), 괘상청(卦上淸), 괘하청(卦下淸). 무현(武絃) 등 6줄이 3개의 안족과 16괘(棵)위에 걸쳐져 있다.
이 악기가 실제 공민왕때 만든 것이 확실하다면 현존 가장 오래된 거문고이다. 악기체제가 완벽하고 보관상태가 우수하다. 거문고 술대를 내려칠 때 나는 잡음을 방지하거나 거문고 머리 부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대모(玳瑁)와 향낭(香囊)이 수덕사 거문고의 특징이다. 수덕사 거문고의 대모는 오늘날 거의 볼 수 없는 거북이 등가죽을 말린 것을 붙인 것으로 현전하는 유물 중에 유일하다. 향낭은 연주할 때 마다 은은한 향내가 퍼질 수 있도록 향낭을 학슬에 매단 것으로 이 악기의 기품을 엿볼 수 있다.
1984년 5월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2호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류용환, 「수덕사 유물(거문고)」, 『디지털예산문화대전』 원용강, 「참선도량 수덕사 천년세월 품은 듯」, 동아일보 1993.09.02 주재근, 「왕가에서 피안의 세계로. 예산 수덕사의 거문고」, 『국악소식』, 국립국악원, 2003.06 황정연, 「「공감! 문화재」 역사 품은 이조묵의 거문고」, 세계일보 2016.12.14.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수덕사 유물(거문고)」 두산백과 두피디아, 「수덕사 유물(거문고)」
주재근(朱宰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