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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춤 각 분야에서 고유한 기법과 춤사위, 장단을 갖추고 있는 규범이 될만큼 중요하고 지켜야 하는 춤
법무는 모범이 되고 표준이 되는 춤을 의미한다. 전통춤의 분야에 따라 불교에서는 불법(佛法)을 전하는 불교의식무이며, 일제강점기에 이왕직 아악부에서는 궁중정재무이며, 권번에서는 승무와 검무를 일컬었다. 전통춤 각 분야에서 고유한 기법과 장단, 춤사위, 호흡, 구성을 갖추고 있는 법(法)이 될만큼 중요한 춤이며 반드시 지켜야 하는 춤을 말한다.
법무가 용어로 사용된 유래는 명확치 않다. 다만 조선 후기에 조하망(曺夏望, 1682~1747)이 지은 ‘근민당야석호운(近民堂夜席呼韻)’이라는 시에서 “악녹화는 새처럼 날아서 육보(六譜)를 전하고(萼綠新翻傳六譜) / 공손랑은 쌍검으로 춤추는 법을 남겼다(公孫遺法舞雙刀) ”라 했다. ‘공손랑은 쌍검으로 춤추는 법을 남겼다(公孫遺法舞雙刀)’라는 문구에서 공손랑이 쌍검을 들고 춘 춤이 법무 즉 춤의 표준이라 할 정도로 뛰어났기에 이러한 표현을 했을 것이다. 이처럼 법무는 표준이며 모범이 되는 춤을 의미한다. 하지만 조선시대까지 궁중과 민간의 공연예술에서 춤이 다양하게 추어지지 않았기에 이 시대에 법무가 널리 통용되지는 않았다.
법무의 용례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로, 법무는 불교에서 부처님의 말씀 즉 불법(佛法)을 전하는 의미로 추는 불교 의식무이다. 불도(佛道)를 수련하고 불심(佛心)을 따르는 자들이 지켜야 할 교리나 법도, 규칙을 담았기에 ‘법(法)’을 붙여서 법무(法舞)라 한 것이다. 사찰에서 행하는 재(齋)와 같은 불교의식에서 승려들이 추는 법고(法鼓)춤, 바라춤, 나비춤이 이에 속한다. 이 춤들을 범패(梵唄)에 대응해 범무(梵舞)라 하기도 하며, 작법(作法)이라 하기도 한다.
두번째는 일제강점기에 이왕직 아악부(李王職 雅樂部)에서 궁중정재를 ‘법무’로 범주화했다. 이왕직 아악부 서류철인 『조선악개요』에서 일무(佾舞), 법무(法舞), 속무(俗舞)를 분류하면서, 일무는 ‘제례용(祭禮用)’이라 설명하며 문무, 무무, 보태평지무, 정대업지무를 들었고, 법무는 궁중연례용(宮中宴禮用)이라 설명하며 몽금척(夢金尺) 이하 44종의 궁중무를 들었다. 즉 이왕직 아악부에서 법무는 정재무를 뜻했던 것이다. 한편 궁중무를 법무라 칭했던 첫 사례는 조선정악전습소 분교실이 기녀들을 교육했던 과목에서 볼 수 있다. 조선정악전습소는 1910년 경술국치 후 국악계 주요인사들이 1911년에 궁밖에서 조직한 국악단체이다. 궁중의 여악(女樂)이 1908년에 장악과에서 경시청 감독으로 넘어가면서 실질적으로 사라지자, 1912년에 여악분교실을 설치하여 궁중여악을 보존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기녀들를 모아 가사, 수신시조, 잡가, 법무, 승무, 거문고, 가야금, 양금, 생황, 도화 등을 가르쳤다.(『매일신보』1912. 8. 29) 이 교육 과목 중에서 법무는 궁중정재 종목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왕직 아악부가 악인들을 양성하기 위해 5학년제로 운영한 아악부원양성소에서도 법무라는 과목으로 정재무를 가르쳤다. 1926년 아악부원양성소의 교육과정 개정에서 법무(法舞)를 신설했고, 1941년 3월에 다시 개정된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 규정의 학과목에도 일무와 법무가 나란히 명시되었다. 이왕직 아악부가 종묘와 문묘에서 행했던 제사용 춤을 일무(佾舞)라 했고, 잔치나 연회에서 추었던 궁중무용을 법무(法舞)라 했던 것을 드대로 따랐다.
셋째는 일제강점기 권번에서 기생들이 반드시 추어야 할 춤을 법무라 했고, 권번의 법무는 승무(僧舞)와 검무(劍舞)였다. 이는 승무와 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였던 이매방(李梅芳, 1926~2015)의 구술에 의한 것으로, 이매방은 권번에서 추는 춤 중에 승무와 검무를 법무(法舞)라고 여러 자리에서 설명했다. 또한 판소리 명창 김여란(金如蘭, 1907-1983)이 1917년부터 1921년까지 김비취(金翡翠)에게 시조(時調), 시창, 양금(洋琴), 가야금, 가곡, 법무(法舞) 등을 학습했다고 회고했다. 법무는 기녀들이 추는 춤 중에 가장 핵심적인 춤으로서, 장단, 춤사위, 호흡, 구성 등에서 기초부터 완성까지를 갖추고 있으며, 또한 역사성이 있는 춤이므로 권번의 기생이라면 그 법도를 지켜야 하는 규범적인 춤이며, 능히 추어야 했던 하는 춤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승무와 검무는 일제강점기에 가장 많이 추어졌고, 많은 공연 사진을 남긴 기생들의 주요 종목이었다.
법무는 특정 분야의 춤으로 여겨졌으나, 불교에서는 불법을 전하는 불교의식무이며, 일제강점기 이왕직 아악부에서는 궁중연례무를 지칭했으며, 권번에서는 승무와 검무를 일컬었다. 모두 다른 분야의 춤으로서, 법무는 모범이 되고 표준이 되며 반드시 지켜야 하는 춤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특히 이왕직 아악부 시기에 궁중무를 법무로 지칭한 점은 조선과 대한제국이 망한후 궁중무를 연주할 왕실이 사라진 후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국립국악원, 『국악연혁』, 국립국악원, 1982. 김영희, 「법무(法舞)에 대해」, 『공연과리뷰』 통권 100호, 현대미학사, 2018. 박황, 『판소리 이백년사』, 사사연, 1987. 『서주집(西州集)』 卷2. 이매방 구술 김영희 채록, 『이매방』,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6. 『조선악개요』, 이왕직아악대, 년대 미상. 『매일신보』 1912. 8. 29.
김영희(金伶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