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음악사』(朝鮮音樂史)
1930년대 이왕직아악부가 전승하고 있는 음악을 음악사, 악기, 음률, 악곡, 노래, 춤의 여섯 편으로 정리한 필사본 원고를 묶은 총서 형태의 악서
『조선음악서』는 1930년대 이왕직아악부의 악서 편찬 사업과정에서 집필된 수정본 원고를 묶은 책자이다. 제1편 『조선음악사(朝鮮音樂史)』, 제2편 『악기편(樂器篇)』, 제3편 『음률론(音律論)』, 제4편 『악곡편(樂曲篇)』, 제5편 『가편(歌篇)』, 제6편 『무편(舞篇)』의 전 6권 구성으로 필사본 원고를 책자 형태로 묶었다. 성낙서를 중심으로 김영제와 함화진 등이 참여하여 이왕직아악부가 전승하고 있는 음악을 주제별로 정리하였다. 여러 문제로 간행되지 못한 상태에서 보관되다가 현재 국립국악원 소장 유물로 보존되고 있다.
이왕직아악부는 두 차례에 걸쳐 악서편찬 사업을 진행하였다. 1차 악서편찬은 1926~1930년까지 이왕직 촉탁으로 임명된 안확(安廓, 1886~1946)에 의해 진행되었으나 내부 사정으로 간행되지 못했다. 2차 악서편찬은 1930~1939년까지 안확의 후임으로 들어온 성낙서(成樂緖, 1905~1988)가 주도하였으며, 해당 시기의 아악사장이었던 김영제(金寧濟, 1883~1954)와 함화진(咸和鎭, 1884~1948) 등이 편찬사업에 참여하였다. 1939년 2월 14일자 『동아일보』에 10년간 사료 수집하며 정리한 이왕직아악부의 대사업 『조선음악사』가 이번 가을에 완간된다고 보도되었는데, 신문에 보도된 『조선음악사』가 바로 『조선음악서』이다. 『조선음악서』는 아쉽게도 예산 부족 등의 문제로 간행되지 못한 상태에서 전 6권의 원고가 책자 형태로 묶여 이왕직아악부에 보관되었다가 국립국악원에 그대로 전해졌다. 1980년대 국립국악원 자료실에서 겉표지를 보완하였으며, 현재는 유물로 분류되어 수장고에 보존되고 있다.
○ 체재 및 규격 전 6책. 19.4cm(가로) × 26.5cm(세로) 겉표지, 속표지, 내지는 ‘악서편찬용지’라고 적힌 200자 세로쓰기 원고지 형태의 인찰지. ○ 소장처(자) 국립국악원 ○ 편찬연대 및 편저자 사항 『조선음악서』는 1930년부터 1939년까지 오랜 시간을 두고 집필되었으며, 각 편 서술은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다. 제1편 『조선음악사』는 국한문본 표지에 1930~1937년이라고 표기되어 있어 이 시기에 서술된 것으로 보인다. 1939년 2월의 『동아일보』 기사에 전 4권으로 완간된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제1편 『조선음악사』, 제2편 『악기편』, 제3편 『음률론』, 제4편 『악곡편』이 먼저 집필 완료되어 간행될 예정이었고, 제5편 『가편』과 제6편 『무편』은 뒤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제5편 말미에 “기묘 6월 중한 완(己卯 六月 中澣 完)”이라는 기록이 있어 수정본 원고가 1939년에 완료된 정황을 알 수 있다. 『조선음악서』의 집필은 성낙서․김영제․함화진의 3인을 주축으로 이루어졌다. 신문기사에 “이 일의 시작은 전 악사장 김영제씨 때부터로 공로가 크고 현재는 성낙서씨의 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여기엔 또한 현재 악사장 함화진씨의 악기도설(樂器圖說)이 먼저 만들어진 만큼 또한 공로한 바 크다.”고 보도하였다. 이 기사 내용과 『조선음악서』 전 6권의 원고 필체를 고려하면, 성낙서가 제1편 『조선음악사』를 비롯하여 제2~6편까지 총론 및 각 장절의 각론을 집필하였고, 제2~6편까지의 악곡․악보․악기․노랫말․정재 동작절차 등 실제적인 음악내용은 서체가 달라서 김영제와 함화진 등이 기여한 부분으로 보인다. 성낙서는 1930년에 경성제국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이왕직 예식과(禮式科)에서 ‘전사보(典祀補) 겸 속(屬)’으로 근무하며 종묘와 관련된 일을 주로 담당하였다. 1931년에 『이왕가고전조선무악』 해설서를 저술하였고 아악부원양성소에서 조선사, 영어, 한시해설 등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성낙서는 『조선음악서』 편찬사업에서 제1편 『조선음악사』 집필을 도맡았고, 각 권의 목차 구성 체계를 잡았으며, 총론 및 각론도 집필하였다.
김영제와 함화진은 악서 편찬사업을 진행하던 시기에 이왕직아악부의 아악사장을 맡고 있었다. 김영제는 1929년에 제4대 아악사장(雅樂師長)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평소 악리 연구, 악기 개량, 관악 보법 수정, 국악자료 수집, 악률 개정 등 다방면에 걸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함화진은 김영제의 뒤를 이어 1932년 제5대 아악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1915년에 『조선악개요』(1915)를 저술하였고 1933년에 아악생의 교재로 『조선악기편』과 『이조 악제원류』를 편저하였는데, 이러한 저술 이력은 『조선음악서』 간행에도 영향을 미쳤다. 요컨대 이왕직아악부가 전승하고 있는 가무악 관련 내용은 김영제와 함화진이 정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구성 및 내용
현재 『조선음악서』의 편명은 제1~2편이 원래의 편명과 차이가 있다. 전 6권의 편명과 유물번호는 다음과 같다.
원래 편명 | 현재 편명 | 면수 | 유물번호 | 장서번호 | 장서인 |
---|---|---|---|---|---|
제1편 조선음악사 | 조선음악사 | 1~468 | KS-000962 | 962 | × |
제2편 악기편 | 제1편 악기편 기1 | 1~209 | 보유-000811 | 000991 | ○ |
제2편 악기편 기2 | 210~396 | 보유-000812 | 000992 | ○ | |
제3편 음률론 | 제3편 음률론 | 1~77 | 보유-000813 | 000995 | ○ |
제4편 악곡편 | 제4편 악곡편 | 1~77 | 보유-000814 | 000993 | ○ |
제5편 가편 | 제5편 가편 | 1~210 | 보유-000815 | 000994 | ○ |
제6편 무편 | 제6편 무편 | 1~90 | 보유-000816 | 000996 | ○ |
제1편 『조선음악사』는 겉표지에 “조선음악사”로만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속표지에 “조선음악서 제1편 조선음악사”로 표기되어 있어 『조선음악서』의 제1편임을 알 수 있다. 제2~6편은 유물번호가 000811~000816까지 연속된 번호로 부여되어 있으며 모두 국립국악원 장서인이 찍혀 있어 한 질로 관리되고 있다. 제2편 『악기편』이 현재 제1편과 제2편으로 나눠져 있는데, 제1편 『조선음악사』를 분실한 상태에서 나머지 5편의 겉표지를 보완하는 작업 중에 제2편을 두 개로 분책하게 되었다. 제1편 『조선음악사』는 한동안 분실 상태로 처리되었다가 김기수 기증 유물로 다시 국립국악원에서 소장하고 있으나 『조선음악서』 총서에는 빠져 있는 상태이다.
제1편 『조선음악사』는 왕조사에 따른 역대 음악사를 총 8장으로 서술한 부분이다. 제1장 음악의 원시적 경로, 제2장 삼국이전의 악속(樂俗), 제3장 고구려의 음악, 제4장 백제의 음악, 제5장 신라의 음악, 제6장 고려조시대의 음악, 제7장 이조시대의 음악, 제8장 현대의 음악(아악)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다룬 제6장과 제7장은 각각 여섯 개의 절로 세분하여 시대적 특징을 제목으로 드러냈다. 제8장 현대의 아악은 이왕직아악부의 직제, 악기, 현대악곡을 소개하였는데, 아악부원양성소에서 멸절되고 있는 조선아악을 전승하기 위해 당시 5회까지 아악생을 기르고 있다고 기술하였다.
제2편 『악기편』은 전체 5장과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 총론, 제2장 악기 분류법, 제3장 탄주악기(彈奏樂器), 제4장 취주악기(吹奏樂器), 제5장 격주악기(擊奏樂器) 순이다. 격주악기는 재료에 따라 금부․토부․혁부․목부의 네 종류 박자악기로 다시 세분하였다. 탄주악기는 총 14종의 현악기, 취주악기는 16종의 관악기, 격주악기는 32종의 타악기를 소개하였는데, 각 악기 항목에 악기 그림이나 음역, 산형, 연주법 부호 등을 별지로 붙여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한 점이 특징이다. 『악기편』의 그림은 함화진이 집필한 『조선악기편』의 그림을 붙여 넣었으며 내용은 『조선악기편』에 비해 체계적이고 상세하다.
제3편 『음률론』은 음악이론을 다루기 때문에 제목에 ‘편(篇)’이 아닌 ‘론(論)’을 붙였다. 전체 5장으로 제1장 율과 려, 제2장 기초음과 척도, 제3장 율려상생법, 제4장 오성과 칠성―음계, 제5장 선법과 조로 이루어져 있다. 12율 설명에서는 조선, 동양, 서양의 음이름을 비교 제시한 후 오선보에 표기하여 설명하였고, 역대 12율 대조표를 만들어 각 시대나 연구자에 따라 음율 산출에 차이가 많았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5성과 7성의 음정관계를 서양계명으로 설명하였고, 동서음계 비교도를 통해 같은 7음음계라도 동서양의 음정관계에 차이가 있다고 서술하였다.
제4편 『악곡편』은 제례와 연례 등 궁중의식에 쓰이는 악곡을 다룬 부분이다. 제1장 총론, 제2장 조선음악의 음악적 특색, 제3장 악보법, 제4장 제례악곡․연례악곡의 선율진행도, 제5장 제례악곡 및 연례악곡의 분류, 제6장 제례악곡 및 연례악곡의 분석 등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며, 부록에는 제례악곡 및 연례악곡의 약보(略譜)를 제시하였다.
제5편 『가편』은 이왕직아악부에서 전승하고 있는 노래를 다룬 부분이다. 서설, 제1장 악장, 제2장 가곡․가사․시조의 특질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며, 부록에는 가곡․가사․시조의 사설과 약보(略譜)가 들어가 있다. 제1 악장은 종묘악장과 문묘악장을, 제2 가곡․가사․시조의 특질에서는 가곡 위주로 악곡 구성, 장단, 연창방식, 발성, 반주 순으로 설명하였다. 이 설명 뒤에는 다시 조선성악의 특징으로 ‘뒷목’과 ‘비음’등 발성법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부록에는 가곡․가사․시조 순으로 사설과 악보를 실었다.
제6편 『무편』은 이왕직아악부에서 전승하고 있는 춤에 대해 기술한 부분이다. 제1장 총론, 제2장 일무, 제3장 정재로 구성하였다. 제1장 총론에는 일무의 전승 배경을 간략히 서술하였고, 제2장 일무는 종묘육일무와 문묘팔일무의 동작절차를, 제3장 정재에서는 <처용무>, <춘앵전>, <무고>, <가인전목단>, <향령무>, <봉래의>, <보상무>, <장생보연지무>, <수연장>, <만수무> 등 10종 정재의 동작절차를 제시하였다.
『조선음악서』는 비록 간행되지 못하였지만 이왕직아악부가 지향했던 악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 음악사료로서의 의의가 매우 크다. 이왕직아악부의 악서편찬 방향은 조선시대의 『악학궤범』과 같이 형식면에서 목차 구성과 글의 전개가 일관된 체계를 갖추고, 내용 면에서 자신들이 당시 연행하고 있는 가무악을 중심으로 음악사, 악기, 음률, 노랫말, 악보, 동작절차 등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조선음악서』의 서술 내용은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궁중악무의 변화 양상을 알 수 있는 핵심자료이며, 서술 방식에서는 조선시대의 『악학궤범』과 현대의 국악사 및 국악이론서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근대 음악사료로서의 시대적 의미를 갖는다.
국립국악원 소장품번호 김기수 기증-000962, 유물-000811~816
『조선악개요(朝鮮樂槪要)』. 『조선아악(朝鮮雅樂)』. 『조선악기편(朝鮮樂器編)』.
『동아일보』, 「십년간 사료를 수집정돈, 불원인쇄, 금추에 완간」, 1939년 2월 14일자. 국립국악원 편, 『국악연혁』, 국립국악원, 1982. 국립국악원 편, 『李王職雅樂部와 음악인들』, 서울: 국립국악원, 1991. 성경린, 『조선의 아악』, 서울: 박문출판사, 1947. 성낙서 저(성옥경 편), 『(운정 성낙서선생 문집) 안엽기(雁葉記)』, 창녕: 창녕성씨 운포공파 종중, 2000. 이수정, 「이왕직아악부의 조직과 활동」, 서울: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6. 김은자, 「이왕직아악부의 『조선음악서』 편찬과 그 의미」, 『한국음악사학보』 제70집, 한국음악사학회, 2023.
김은자(金恩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