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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 정재인 아박무(牙拍舞)에서 사용하는 무구(舞具)
아박은 향악 정재인 아박무를 출 때 활용하는 도구이다. 고려시대에 동동(動動)이라 불리던 아박무가 조선시대를 거쳐 대한제국 시기까지 궁중 연향에서 지속적으로 연행되며, 무구인 아박도 장기간 쓰였다. 20세기 초에 단절된 아박 정재를 한국전쟁 이후 복원하면서 무구인 아박도 다시 사용하고 있다.
아박은 1078년(문종 32), 중국 송(宋)에서 보낸 국신물(國信物) 명단에 ‘누금홍황록아박판(鏤金紅黃碌牙拍板)’이란 명칭으로 등장하는데, 그 용도는 정확하지 않다. 춤에 쓰인 아박은 동동에서 나온다. 동동은 아박무의 이전 호칭으로, 춤에서 동동사를 가창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시대의 동동이란 칭호는 조선초기까지 남아 아박무와 혼용되다가 결국 아박무로 정리되었다. 그 가운데 무구인 아박도 지속적으로 쓰였다. 아박무는 무구를, 동동은 창사를 강조한 호칭이라고 볼 수 있는데, 동동사가 남녀의 음사에 가깝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시대 분위기상 아박무라는 칭호에 무게가 실린 듯하다. 이렇게 조선시대에 이르러 무구인 아박이 춤명에 안착하였고, 이후 변하지 않은 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박은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동동 및 아박무에 지속적으로 쓰이면서 생명력을 함께 해왔다.
아박에 관한 가장 이른 설명은 『고려사』 「악지」에 전하는데, ‘6매(六枚)’라는 단편적인 정보만 있을 뿐이다. 이보다 상세한 내용은 『악학궤범』에 나온다. 그림, 재료, 규격이 밝혀져 있으며, 외견상 음악의 시종(始終)을 알리는 박(拍)과 유사하다. 그러나 재료와 규격은 상이하다. 단단한 나무로 만드는 박에 비해 아박은 뼈나 뿔 종류로 제작하였다. 상아(象牙)를 기본으로 삼았지만 고래뼈[鯨骨], 소뼈[牛骨], 사슴뿔[鹿角] 등으로 대치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아박의 음향과 음색은 박과 달랐다. 규격도 박과 차이가 났다. 박의 전체 길이가 1척 3촌인데, 아박의 경우 6촌 8푼이어서 박의 절반 정도 크기이다. 『악학궤범』은 영조척을 준수했으므로, 이에 의거하여 수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현행 미터법으로 환산한 근거는 박물관 소장 영조척의 치수를 평균한 값에 의거한 것이다.
아박의 규격(1영조척=30.3cm) | ||
『악학궤범』 | 미터법 | |
전체 길이 | 6寸 8分 | 20.604 cm |
위 너비 | 6分 | 1.818 cm |
위 두께 | 1分半 | 0.4545cm |
아래 너비 | 8分 | 2.424 cm |
아래 두께 | 2分 | 0.606 cm |
『악학궤범』 이후 『제기악기도감의궤』를 비롯한 순조대와 고종대의 연향 의궤 등에서 아박이 산견된다. 여러 문헌에 보이는 아박의 모습은 유사하다. 규격은 없고 그림만 수록하여, 조선후기에 아박의 치수가 변했는지 알 수 없다. 현재 아박의 재료는 나무로 바뀌었다. 그 크기도 다양하여, 대(38-42cm), 중(34-37cm), 소(28-33cm)로 세분하기도 한다.
아박은 무용수가 허리띠에 꽂기도 하고, 팔이나 다리에 치는 등의 방식으로 아박무에서 활용된다.
아박은 향악 정재 아박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핵심 도구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고려사』 『악학궤범』 『제기악기도감의궤』 『순조무자진작의궤』 『순조기축진작의궤』 『헌종무신진찬의궤』 『고종정축진찬의궤』 『고종임진진연의궤』 『고종신축진연의궤』 『정재무도홀기(계사)』 『여령각정재무도홀기(신축)』 한양국악사 (https://yangjikukak.com/category/%EB%AC%B4%EC%9A%A9%EB%B0%95/252/)
이정희(李丁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