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립 목적
조선 초에 예(禮)와 악(樂)을 새로 정비하면서 장악 기관이 역할에 따라 여럿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관습도감은 고려조에 이어 주로 연향에서 향악과 당악, 즉 아악이 아니라 속악을 담당하는 악공ㆍ여기ㆍ관현맹인 등 악인의 관리와 이를 통한 궁중 공연예술의 유지, 전승을 위해 설립되었다.
○ 조직의 체계와 구성원
조선시대 관습도감은 향악과 당악의 사용 전반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악공과 여기(女妓), 내연(內宴)에서 음악을 연주한 관현맹인, 회례에서 춤을 담당한 무랑ㆍ무공ㆍ무동 등 악인과 관원이 소속되어 있었다. 악인의 경우, 『세종실록』에 따르면, 1423년(세종 5)에 관습도감 악공 57명, 여기 108명이 있었고, 1431년(세종 13)에 관현맹인이 18명 있었는데, 1447년(세종 29) 여기가 관현 반주를 맡게 되면서 관현맹인은 폐지되었다. 관원으로는 악공 출신의 체아직만 있던 아악서와 전악서와 달리, 과거를 거쳐 관직 생활을 하는 관리 중에서도 조의(朝儀)를 행할 때 당상(堂上)에 오를 수 있는 당상관이 배속되었다. 이들 관원은 시기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제조가 5~6명, 사(使)와 부사(副使)가 1~2명, 판관이 대략 2명이 있었다. 관습도감은 전악서의 유관 기관으로 장악기관 중에서도 중요하게 취급되어 제조보다 높은 실안제조(實按提調)가 있었고, 업무의 전문성과 연속성을 위해 일부 관원을 구임(久任)하게 하였다.
○ 역사적 변천
관습도감은 주로 연회의 향악과 당악을 비롯한 속악을 담당하였다. 1433년(세종 15)부터는 아악이 대대적으로 정비되어 군신간의 회례에서 속악과 함께 아악을 사용하게 되면서 회례에서 관습도감의 무랑과 무공이 각각 문무와 무무를 연행하였다. 무랑은 1438년(세종 20) 본래 재랑(齋郎)에서 변경된 명칭이다. 회례에서 정재(呈才)는 여기(女妓)가 아니라 무동이 하도록 하였는데, 무동 또한 관습도감에 속했다. 이러한 관습도감은 세종대에 다른 기관에 비해 많은 수의 제조급(提調級) 관원이 배속되었지만, 세조 대에 작악(作樂) 사업이 대체로 마무리되면서 관습도감의 관원이 감소하였고, 1457년(세조 3) 여러 장악 기관들이 통폐합될 때, 악학과 함께 악학도감으로 개칭되었다.
○ 활동관습도감의 악공과 여기 등 악인들은 향악과 당악을 교습하여 왕비와 왕세자의 책봉 때 베푼 연회, 사신연 등의 연례(宴禮)에서 악을 올렸고, 특히 무랑ㆍ무공ㆍ무동은 전악서의 악공과 함께 회례(會禮)에서도 연행하였다. 관원들은 전악서의 악공 등 악인들을 관리하고 실기 연습을 통해 의례가 잘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또한, 복식, 악기와 의물뿐만 아니라, 새로 민간에서 채집된 악곡을 관리하고 조선의 유가적 이상에 맞는 새 악장을 제진(製進)하여 신악을 만들고 이것이 잘 사용되도록 하였다.
서인화(徐仁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