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궁중 음악 기관의 맥을 이어온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전통 공연예술 기관.
조선 시대 장악원 악인(樂人)들이 일제강점기에 이왕직아악부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광복 이후 구왕궁아악부라는 단체명으로 활동했다. 구왕궁아악부기 구왕궁사무청에 소속되어 시조강습회와 서울중앙방송국을 통한 라디오 국악해설 등의 활동을 이어오다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단절 위기에 처하게 되자 아악사장 이주환(李珠煥, 1909~1972)을 중심으로 국회에 아악부 국영에 관한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 결과, 1950년 1월 대통령령으로 국립국악원 직제가 공포되었다. 그러나 국악원 개원을 위한 행정적인 후속 조치 중에 6.25 전쟁이 발발했다. 이에 임시 육군 군예대가 창설되었고, 국악 분야는 제3소대 국악소대로 편성되어 평양 공연 등 전시에 따른 활동을 했다. 이후 임시 수도인 부산에 피란 중 국립국악원이 1951년 4월 20일 개원하게 되었다.
○ 설립 목적
1950년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제정한 국립국악원 직제가 대통령령 제271호로 공포되었다. 이에 따르면, 국립국악원은 “민족음악의 보존과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의 소속기관 직제 제10장에 따르면, 국립국악원은 지금도 그와 같이 “민족음악을 보존ㆍ전승하고, 그 보급 및 발전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고 있다. 여기서 민족음악은 가(歌)·무(舞)·악(樂)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의 국악을 뜻한다.
○ 조직 체계와 구성원
2025년 1월 현재를 기준으로 국립국악원은 고위공무원 가급인 원장 이하에 기획운영단(기획관리과, 장악과, 국악진흥과, 무대과)과 국악연구실, 국악연주단(정악단, 민속악단, 무용단, 창작악단), 세 곳의 소속 지방국악원이 있다. 구성원으로는 행정직, 연구직, 방송무대직 등 일반직공무원, 국악연주단 단원, 공무직, 기획단원 등이 있다. 기획관리과는 주요사업계획수립, 인사, 예산, 시설을 담당하고, 장악과는 공연과 마케팅을 담당한다. 장악과의 명칭은 조선 시대 장악원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국악진흥과는 국악 진흥 보급, 교육, 홍보를 담당하고, 무대과는 음향, 조명, 기계, 장치, 의상, 소품, 악기 등을 담당하며, 국악연구실은 국악 자료 조사 및 수집, 정책ㆍ교육ㆍ악기 연구, 국악 유물 관리, 자료 제공, 정보화 사업 및 전산 운영 등을 담당하고 있다.
국악연주단 중 정악단은 조선 시대 장악원에서 연주하던 궁중악, 그리고 풍류악을 연주하고, 민속악단은 판소리와 산조, 민요 등 민속악과 판굿 등 연희를 연행한다. 무용단은 전통 무용 전반을, 창작악단은 전통 국악에 기초한 창작음악을 담당한다.
소속 지방국악원으로 현재 전북 남원 소재 국립민속국악원, 전남 진도 소재 국립남도국악원, 부산 소재 국립부산국악원 등이 있다.
○ 역사 변천 과정
1951년 초대 원장으로 구왕궁아악부 아악사장이었던 이주환이 임명되었다. 이때 13명의 연주자들이 예술사로 임명되었다.
1953년 정부의 서울 환도와 함께 국악원은 기존의 구왕궁아악부 청사를 미군이 사용하는 등의 사정으로 몇 곳을 전전하다가 1955년 종로구 운니동에 정착하였다. 이때 국악사양성소가 국악원 부설로 개소되었다. 1967년 종합민족문화센터 1차 계획에 따라 국악사양성소와 함께 남산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1972년 국악사양성소는 국립국악고등학교로 승격되면서 문교부로 이관되었는데, 당시 국립국악원은 문화공보부 소속이었다. 이후 1982년 예술의전당 서초동 건립이 결정되자, 국립국악원도 1987년 서초동으로 이전했다.
국립국악원 인원은 전체적으로 점차 증원되었고, 조직은 확대되었다. 개원 당시에는 구왕궁아악부에서 궁중악을 담당하던 연주자들이 중심이 되었지만, 1979년 〈중요무형문화재 상설극장 공연〉을 위해 민속악 연주자들을 대거 채용하였고 민속악단이 만들어졌다. 1981년부터 정악 중심의 연주자와 무용수를 제1계열, 민속악 연주자를 제2계열로 구분하여 관리하고, 1993년에는 정악단, 민속악단, 무용단을 분리 운영했다. 2004년에 국악창작 활성화를 위하여 창작악단이 창단되었다. 지역의 국악 진흥을 위하여 1991년 국립민속국악원을 시작으로, 2004년 국립남도국악원, 2008년 국립부산국악원이 개원했다. 또한, 국악FM방송국 (FM 99.1 MHz) 개국을 추진하여 2001년 국악원에서 방송국이 개국했으나, 방송국은 2007년 상암동으로 이전했다.
○ 활동
국립국악원은 ‘민족음악의 보존ㆍ전승과 보급 및 발전’을 위해서 공연, 교육 및 진흥, 연구 개발을 포함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공연시설로는 대극장 예악당과 자연음향 기반의 우면당, 좌식 의자에 앉아 공연을 감상하는 풍류사랑방, 야외 연희마당이 있으며,
이곳에서 대관 공연을 포함한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자체공연으로는 연주단별 정기 공연, 상설공연, 계기별, 절기별, 대상별 기획공연 등이 있어서 국내 다양한 문화공간과 지역에서 공연할 뿐 아니라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문화 외교사절로서 공연을 펼치고 해외 유수의 예술기관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1996년 대극장 개관 이후 대형 국악극 등이 가능해지면서 창작극 뿐 아니라 종묘제례악, 사직제례악, 연례악 등 전통음악을 의례와 함께 복원 및 재현하여 대규모 ‘대표공연’을 제작해왔다. 이러한 공연 영상자료는 민간 기획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자원화하고 있다. 《》
국악 교육과 진흥 측면에서는 1951년 부산에서 국악강습회를 시작한 이래 교원, 청소년, 어린이, 외국인 등 대상별로 특화된 강습 및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개최해 왔다. 특히 미래 세대 어린이를 위한 국악동요, 국악동화 등의 사업을 지속하면서 한편으로는 전문 국악인 양성을 위해서 경연대회, 학술상 및 평론상 공모 등 사업을 펼치고 있다. 국악의 생활화를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보급하면서 2008년 온라인교육사이트를 개설하여 국악 교육의 파급력을 높였다.
연구 개발 측면에서는 국악 학술진흥 차원에서 무보(舞譜)와 악보, 고악보와 악서를 영인하고 국립국악원 및 국악계 현황 자료를 담은 『국악연감』 등 매년 많은 도서와 시청각 자료를 발간ㆍ제작해왔다. 또한 일찍이 1964년 국악기개량연구위원회를 설치한 바 있는데, 2006년에는 국악연구실 안에 악기연구소를 설립하여 악기의 과학적 연구 및 복원, 디지털음원을 개발하고 이에 더 나아가서 국악 전문 AI 음원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다.
국악연구실에서 운영하고 있는 국악박물관은 국악 유물과 악기 전시관으로 1995년 개관했다. 현재는 국악박물관 안에 국악아카이브, 국악자료실과 특수자료실(북한음악자료실)을 함께 두어 관람객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국악박물관에서는 디지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가상과 실제를 결합한 국악 영상체험 전시 프로그램을 운용하면서.국악아카이브를 통해 국립국악원 기록물 뿐 아니라 국내외의 국악관련 기록물을 수집하여 서비스하고 있다.
역대 궁중 음악 기관의 전통을 이어 온 국립국악원은 세계적으로 드물게 긴 역사를 가진 국립 전통공연 예술기관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소속기관으로 ‘국악의 종가’로 불리며, 각종 공연을 비롯하여 교육 및 진흥, 연구 개발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국악의 미와 가치를 국내외에 알려왔다. 2024년 국악진흥법이 시행됨에 따라 국립국악원은 국악계의 구심점으로서 세계를 무대로 한류의 원형 콘텐츠인 국악을 진흥하는 더욱 큰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권혜경, 「음향 영상 콘텐츠 제작 흐름과 변화」, 『국립국악원 개원70년사』, 국립국악원, 2021. 류성렬, 「건축과 시설로 본 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 개원70년사』, 국립국악원, 2021. 명현, 「국립국악원 조직의 변천」, 『국립국악원 개원70년사』, 국립국악원, 2021. 박일훈, 「1945년 광복부터 국립국악원 개원까지」, 『역대 국립음악기관 연구』, 국립국악원, 2001. 송상혁, 「대표사업으로 보는 국립국악원 70년 약사」, 『국립국악원 개원70년사』, 국립국악원, 2021. 국립국악원 누리집(www.gugak.go.kr)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2024.6.11. 시행(https://www.law.go.kr/법령/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21423,20090417)).
서인화(徐仁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