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쟁(古箏)
삼국시대부터 중국에서 전래된 발현악기의 하나이다.
삼국시대부터 쟁의 기록이 발견되며, 1114년에 송나라의 신악(新樂) 전래와 함께 4면의 쟁도 함께 고려로 들어왔다. 세종 때에는 쟁을 새로 제작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악학궤범』에는 15현 대쟁(大箏)의 산형도와 당악에만 연주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 쟁의 기원
쟁과 관련된 문헌 기록은 『사기(史記) “이사전(李斯傳)”의 “간축객서(諫逐客書)”에서 최초로 발견된다. 이 기록은 기원전 237년에 진왕(秦王)이 외국의 많은 문인을 쫓아내고자 할 때 작성된 상소문이었기 때문에 쟁의 역사는 적어도 2천년이 넘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쟁의 기원과 관련된 학설은 학자마다 분분하여 어느 것이 옳은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쟁의 여러 가지 기원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➀ 슬(瑟)기원설
쟁이 슬(瑟)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은 여러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당나라 조린(趙磷)의 『인화록(因話錄)』(주석: 조린趙磷, 『因話錄』:“箏, 秦樂也, 乃琴之流. 古瑟五十弦, 自黃帝令素女鼓瑟, 帝悲不止, 破之, 自後瑟至二十五弦. 秦人鼓瑟, 兄弟爭之, 又破爲二. 箏之名自此始.”), 송나라의 『집운(集韻)』(주석:『集韻』:“秦人薄義, 父子爭瑟而分之, 因此爲名. 箏十二弦, 蓋破二十五而爲之也.”), 『속일절경음의(續一切經音義)』(주석: 續一切經音義:“本大瑟二十七弦, 秦人不義, 二子爭父瑟, 各得十三弦, 因名爲箏.”), 일본의 『악도류집(樂道類集)』(주석: 岡昌, 『樂道類集』:“或雲:秦有婉無義者. 以一瑟傳二女, 二女爭引破, 終爲二器, 故號箏.”) 등의 기록을 들 수 있다. 이들 문헌에 의하면 쟁은 진(秦)나라 사람의 다툼으로 인해 슬(瑟)이 둘로 깨지면서 생겨난 악기라고 한다. 슬(瑟)기원설에 의하면 쟁의 발생지는 오늘날 중국의 서북지역, 즉 고대 진나라 땅에 해당되는 곳이다. 이 때문에 쟁을 진나라와 연관시켜 설명하거나 또는 진쟁(秦箏)이라 소개하기도 한다.
② 축(築)기원설
한(漢)나라의 응소(應劭)는 『풍속통(風俗通)』에서 “쟁은 5현이며, 축의 몸을 가지고 있다.(箏, 五絃築身也)”라고 하였고, 동한(東漢)의 허신(許愼)은『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쟁은 현을 타고 축의 몸을 가진다.(箏, 鼓弦築身也.)”라고 하였다. 쟁의 축기원설은 바로 이 두 문헌자료를 근거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축(築)은 어떠한 악기인가? 『설문해자(說文解字)』, 『석명(釋名)』, 『구당서(舊唐書)』의 기록을 보면 축(築)은 대나무로 만든 채로 현을 두드리며 연주하는 현악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풍속통(風俗通)』과 『설문해자(說文解字)』에 기록된 쟁의 모습은 축과 같고, 5현을 가지고 있다.
③ 몽괄(夢括)기원설
이 기원설을 제시한 문헌은 부현(傅玄)의 『쟁부서(箏賦序)』와 『풍속통(風俗通)』이다. 『풍속통(風俗通)』의 저자는 쟁이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확실하게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 축기원설과 몽괄(蒙括)기원설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2) 중국 쟁의 발전과정
응소(應劭)의 풍속통(風俗通)』과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의하면 초기의 쟁은 다섯 개의 현과 축의 몸을 가지고 있다. 즉, 초기의 쟁은 금과 같이 다섯 개의 현만 가지고 있었다.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금의 현수는 초기의 5현에서 7현으로 고정된 후 현재까지 그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에 쟁은 시대에 따라 현의 수가 점차 늘어나 전국시대의 쟁(箏)은 5현이었으나 진한(秦漢)시대 들어와 12현으로 늘어났다.
동한(東漢)시기인 위(魏)나라 완우(阮瑀)의 『쟁부(箏賦)』와 서진(西晉)시대 부현(傅玄)의 『쟁부(箏賦)』에 따르면 진한(秦漢)시대의 쟁은 전체 길이가 육척이고, 12개의 현과 높이가 대략 3촌인 안족(雁足)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당 ․ 송시대의 쟁은 주로 아악과 속악에 사용되었고, 대부분 12현 또는 13현이다. 명나라 때에는 현이 더 추가되어 14현, 15현으로 발전하였고, 현의 숫자에 따라 연주하는 음악도 달랐다. 15현의 쟁은 주로 궁중음악에 사용되었고, 14현의 쟁은 민간음악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청나라 후기에는 현의 수가 더 늘어나 16현이 되었고, 현의 재료 또한 명주실에서 구리현으로 대체되었다. 이로 인해 쟁의 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맑아졌고, 소리의 변화도 풍부해졌다. 1930년대에는 쟁의 현이 다시 철사로 바뀌어 그 소리가 더욱 밝게 변하였다. 1950년대 이후에는 16현의 전통 쟁 이외에 21현, 23현, 25현의 다현(多絃) 쟁이 출현하였으며, 이 중에서 16현의 전통 쟁과 21현 쟁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조(調) 바꿈을 편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조쟁(轉調箏)과 반음(단2도)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접식쟁(蝶式箏) 등 새로운 형식의 쟁도 개발되었다.
쟁은 본래 합주에 사용되었지만 19세기 이후로부터 현재까지 대부분 독주 악기로서 사용되어 왔다. 연주할 때는 연주자가 오른손 손톱이나 가짜 손톱, 가조각(假爪角)을 끼고 줄을 튕기거나 뜯어 연주한다. 그리고 왼손은 줄을 눌러 흔드는 농현으로 음색에 변화를 준다. 음색은 맑고 깨끗하며, 부드러우면서도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3) 한국 쟁의 발전과정
『수서(隋書)』권81과 『북사(北史)』권94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악기를 설명할 때 모두 쟁(箏)이 발견되며, 『통전(通典)』권146, 『구당서(舊唐書)』권29, 『신당서(新唐書)』권21에는 고구려의 악기 중에 탄쟁(彈箏)과 추쟁(搊箏)이 있다고 설명한다.
1114년(예종9년, 송휘종 정화4년)에 송나라에서 돌아온 고려 사신 안직숭(安稷崇: 1066∼1135)은 송휘종(宋徽宗:1082∼1135)이 하사한 악기와 악보, 그리고 지결도(指訣圖)를 가지고 왔다. 이때 고려로 보낸 악기는 방향, 비파, 오현, 쌍현, 쟁, 공후, 필률, 적, 지, 소, 포생, 훈, 대고, 장고, 박판 등이 있으며, 이중에는 4면의 쟁도 포함된다. 이후에 쟁은 주로 당악에만 연주된다.
『악학궤범』권7 “당부악기도설(唐部樂器圖說)”에는 대쟁(大箏)의 기록이 있고, 15현이 있다. 『세종실록』권26에는 대쟁(大箏) 3면을 새로 제작하였다는 기록과 조회, 연향에서 연주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 쟁의 제도와 조현 ⓛ 중국 쟁의 제도와 조현 쟁은 대략 길이가 120cm, 넓이가 30cm정도이며 주로 오동나무를 이용해 만든다. 예전에는 현을 명주실과 구리로 만들어 많이 사용하였지만 요즘은 철사와 나일론으로 만든다. 전통 방식의 13현, 16현 쟁이 있고, 21현의 현대식 개량 쟁도 많이 사용된다. 현은 나무를 깎아 만든 안족으로 받쳐 세우는데, 이를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음을 조율한다. 손톱으로 연주하거나 또는 가짜 손톱을 손가락에 끼고 연주하며 가짜 손톱은 대부분 플라스틱이나 유기유리, 바다거북이 등껍질 등으로 만든다. 쟁은 오음음계를 사용하며 반음인 “fa”와 “si”는 “mi”와 “la”의 위치에서 현을 강하게 눌러 소리 낸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16현의 쟁과 21현 쟁의 조현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현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음열 | sol | la | do | re | mi | sol | la | do | re | mi | sol | la | do | re | mi | sol |
음고 | A | B | C | E | ♯f | a | b | d¹ | e¹ | ♯f¹ | a¹ | b¹ | d² | e² | ♯f² | a² |
현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음열 | do | re | mi | sol | la | do | re | mi | sol | la | do | re | mi | sol | la | do | re | mi | sol | la | do |
음고 | D | E | ♯F | A | B | d | e | ♯f | a | b | d¹ | e¹ | ♯f¹ | a¹ | b¹ | d² | e² | ♯f² | a² | b² | d³ |
② 한국 쟁의 제도와 조현
『악학궤범』권7“당부악기도설(唐部樂器圖說)”에는 대쟁(大箏)의 제도와 조현법을 기록하였다. 대쟁(大箏)의 제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상고하건대, 대쟁 만드는 법은 슬과 모두 같고, 다만 몸이 작고, 네 귀통이에 오목을 붙이고, 그림이 없다. 모두 15현인데, 제1현이 좀 굵고, 제15현으로 갈수록 점점 가늘어진다. 염미(속칭 부들)는 진사 또는 푸른 물 들인 무명실을 쓴다. ○오른손으로 줄을 튕기고, 왼손으로 안족의 뒤를 짚는다. 당악에만 사용한다.”(“按造大箏之制與瑟並同, 但體小, 四隅付烏木無畫. 凡十五弦, 第一絃稍大, 至第十五弦漸次而細. 染尾(俗稱부들)用各色真絲或用青染木棉絲.○右手彈弦, 左手按柱後. 只用唐樂.”)
『악학궤범』권7 대쟁의 길이는 5척 5촌이며, 너비는 7촌 8분이다. 가운데 두께는 2촌 9분이며, 가장자리의 두께는 1촌 8분이다. 줄과 줄의 간격은 5분이고, 담괘의 높이는 5분이다. 대쟁(大箏)의 산형도에 의거하여 조현법은 다음과 같다.
현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울명 | 黃 | 大太 | 夾姑 | 仲蕤 | 林 | 夷南 | 無應 | 潢 | 汰 | 浹 | 㳞 | 淋 | 湳 | 潕 | 潢 | do | re | mi | sol | la | do |
오음약보 | 下五 | 下四 | 界下四 | 下三 | 下二 | 下一 | 界下一 | 宮 | 上一 | 界上一 | 上二 | 上三 | 上四 | 界上四 | 上五 | d² | e² | ♯f² | a² | b² | d³ |
(2) 중국 쟁의 유파
중국의 쟁음악은 언어, 생활, 풍습, 지역 등 여러 가지의 차이로 인해 유파마다 각기 다른 품격과 예술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쟁의 유파로는 산동쟁(山東箏), 하남쟁(河南箏), 객가쟁(客家箏), 조주쟁(潮州箏), 그리고 무림쟁(武林箏) 등을 들 수 있다.
각 유파마다 대표적인 악곡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쟁의 대표곡으로 “한아희수(寒鴉戱水)”, “어주창만(漁舟唱晩)”, “고산유수(高山流水)” 등이 있다.
쟁은 삼국시대부터 기록되어 있을 만큼 그 역사가 매우 길다. 고려시대 송나라의 신악과 함께 유입되어 조선시대까지도 당악에 연주되었다. 지금은 악기만 전승되고 있으나 연주하지 않는다. 쟁의 역사를 보면 한국 악기의 변천과정과 한 · 중 악기의 교류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구당서』, 『신당서』, 『북사』, 『수서』, 『악학궤범』, 대쟁, 산형도, 제도, 조현법, 당부악기도설(唐部樂器圖說), 삼국시대, 신악
許慎, 『說文解字』 劉熙, 『釋名』 『史記』 『舊唐書』 『新唐書』 『北史』 『隋書』 『續一切經音義』 『악학궤범』 이혜구, 『신역 악학궤범』, 한국음악학 학술총서5, 국립국악원, 2000.
박은옥(朴恩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