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서울에 설립된 전통연희회사이자 사설극장으로, 창극을 중심으로 공연을 전개한 단체.
원각사는 명창 김창환을 중심으로 창극 공연을 위해 설립된 전통연희회사였다.
협률사의 레퍼토리를 계승하고 새로운 창극을 만드는 등 공연의 기본 틀을 마련하는 한편, 신연극과 소도구를 활용한 근대적 연출을 시도했으나, 결국 회사로서의 활동은 중단되었다.
협률사가 문을 닫은 후 건물은 잠시 관인구락부로 쓰였다. 그러다 1908년 7월 20일, 김상천, 박정동, 이인직이 경시청의 허가를 받아 원각사를 조직했다. 같은 해 7월 26일 첫 공연을 열면서, 이 건물은 창극을 비롯한 전통연희 공연장으로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다.
○ 설립 목적
원각사의 주된 설립 목적은 창극을 비롯한 전통 연희를 공연하는 것이었다. 1908년 개관 이후 협률사의 주요 레퍼토리를 다시 무대에 올리고, 새로운 작품을 창극화하는 등 상업적 공연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 운영 주체와 주요 구성원
원각사는 김창환을 중심으로 운영된 전통연희회사였다. 주요 구성원으로는 40명의 창부와 24명의 가기를 확보하여 공연을 진행했다. 이외에 이인직이 신연극을 시도하며 창작 활동에 참여했다.
○기능과 역할
원각사는 근대 극장으로서 여러 기능과 역할을 수행했다. 창극의 무대화를 시도해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일부를 창극으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또한 기존 작품을 재공연하면서도 <흥보가>를 새롭게 창극화하며 레퍼토리를 확장했다. 신연극 시도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은세계>와 <수궁가> 같은 신연극을 무대에 올리며 새로운 공연 양식 도입을 꾀했다. 특히 <수궁가>에서는 소도구를 활용해 근대적인 무대 연출을 실험하기도 했다. 친일적 운영 방침에 따라 일본 연극 연습 등을 시도하였으나, 이는 실제 공연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원각사는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한국 근대 공연예술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곳은 창극이 극장 무대에 정착하고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준 점에서 의의가 크다. 판소리 다섯 마당을 무대화하여 창극의 기본 레퍼토리를 마련했고, 창작극과 신연극을 시도하며 공연 양식을 확장했다. 특히, 무대 소품을 활용한 <수궁가> 연출은 근대적 극장 환경 속에서 발전된 공연 형태를 보여준 사례였다.
김민수, 「초창기 창극의 공연양상 재고찰-협률사와 원각사의 공연활동을 중심으로-」, 『국악원논문집 27, 2013. 조영규, 『바로잡는 協律社와 圓覺社」, 민속원, 2008. 유민영, 『한국 근대극장 변천사」, 태학사, 1998.
김민수(金珉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