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기은제(別祈恩祭), 기은(祈恩), 기은제(祈恩祭)
고려 및 조선시대 도교ㆍ불교ㆍ무속을 기반으로 국가와 왕실의 복을 기원한 의례.
별기은은 정해진 의례 외에 별도로 행해진 기은(祈恩) 의례로, 기은의 대상은 이름난 큰 산과 큰 내[名山大川], 성황 등이었다. 고려 초기 및 중기에는 불교와 도교를 기반으로 행해졌으나, 고려말부터 무속적 기반이 강화되었다. 무속을 기반으로 한 고려의 별기은은 조선으로 이어졌고, 조선시대 별기은은 국행과 내행으로 행해졌다. 국행 별기은은 중종 때 폐지되었으나 내행 별기은은 한말까지 존속하였다. 별기은은 국가와 왕실의 주체 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행해졌다.
별기은의 연원은 고대 산신신앙이나 무속신앙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신라의 산제(山祭)에서 유래를 찾기도 한다. 그러나 고려 성종대에 ‘별례기제(別例祈祭)’를 지내지 말자는 제안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 초부터 별기은이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별기은과 관련된 문헌 기록은 고려 성종대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時務二十八條)에 사용된 ‘별례기제(別例祈祭)’에서 처음 발견되고, ‘별기은’이라는 명칭은 ‘별기은사사(別祈恩寺社)’를 수리하라고 명한 고려 의종 22년(1168) 기록에서 처음 발견된다. 고려 의종대 ‘별기은사사(別祈恩寺社)’에서는 불교의 불사(佛事)와 도교의 초제(醮祭) 형태로 별기은이 행해졌다. 이혜구는 도교의 초제가 무속의례였을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의종 24년(1170)에 노인성(老人星) 재초(齋醮)를 위해 ‘별기은소(別祈恩所)’를 설치하였고, 별기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기은색(祈恩色)'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고려 명종 8년(1178)에 술승(術僧) 치순(致純)은 ‘별례기은도감(別例祈恩都監)’ 설치를 주장하였고, 명종대 별기은은 규모가 커지고 국가 제도 속에 편입되게 된다. 고려 고종 4년(1217) 거란병의 내침 시에는 기은도감(祈恩都監)을 설치하여 국가적 환난에 대처하고자 하였다. 별기은은 지방에서도 제행되었는데, 충렬왕 1년(1275) 왕을 대신하여 기은의례를 지낼 ‘외산기은별감(外山祈恩別監)’이 각 도에 파견되었다.
불교와 도교를 기반으로 행해졌던 별기은은 고려말부터 무속적 기반이 강화되었다. 고려 공양왕 3년(1391) 문신 김자수(金子粹, ?~1413)가 무속 기반의 별기은을 비판하였다. 김자수는 당시 무당이 중심이 되어 행해지는 국행 별기은을 행하는 곳이 10여 곳에 이르렀고, 별기은을 위한 경비가 상당하다고 하였으며, 여러 무당들이 태평스럽게 노상에서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춤추고 노래하며 풍속을 해친다고 하였다.
고려 말 무속 별기은은 조선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태종대 국행기은에서는 환시(宦寺)ㆍ무녀(巫女)ㆍ사약(司鑰) 대신 내시별감(內侍別監)으로 하여금 향을 받들어 제사지내게 하는 등 조선 초부터 무속 별기은을 유교식 의례로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여러 차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속 별기은은 유교식 의례와 병존하여 계속 유지되었다.
조선시대 별기은은 국가의 공식적인 의례인 국행과 왕실의 사적인 의례로 내전(內殿)에서 행하는 내행의 형태로 지속되었다. 별기은을 행할 때는 여악(女樂)을 베풀게 하였다는 기록도 실록에 남아 있다. 국행기은은 중종대 유신들의 비판에 의해 사라지게 되었고, 내행기은은 명종대 지방 유생들이 대대적으로 별기은처를 소각하여 인해 위축되었으나 한말까지 존속되었다. 고종 때 명성황후에 의해 행해진 별기도(別祈禱)나 산기도(山祈禱) 발기에서도 무속 내행기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민간에서 규모가 큰 기은을 행하기도 하여, 그 폐단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별기은은 고대 산신신앙이나 무속신앙이 고려시대에 이르러 국가와 왕실의 복을 기원하는 공식적인 의례의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특히 도교와 불교의 위세가 강했던 고려 초, 중기 시기에는 도교와 불교를 기반으로 별기은이 행해졌고, 이후 무속 중심의 별기은이 강화되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이와 같이 별기은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각종 종교ㆍ사상과 융합되어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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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진(姜惠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