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각(令角), 농각, 땡각, 목덩강, 고동(告東)
취구와 기다란 관대, 끝이 벌어진 벨(Bell)로 구성되어 단음을 내는 관악기.
주로 군영에서 신호나 통신용으로 사용하던 관악기이다. 초기에는 동물의 뿔로 만들었으나 시대에 따라 나무, 은, 구리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되었다. 크기에 따라 대각·중각·소각으로 나뉘어 쓰임새를 달리했으며, 조선 후기 동대각(銅大角)은 나발에 흡수되고 목대각(木大角)은 고동 등의 이름으로 민간으로 전승되어 현재까지 전한다. 각은 형명, 노부, 의장, 일무와 정재의 의물에 사용되었다.
각은 이름 그대로 동물의 뿔로 만든 악기에서 유래했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 벽화에 각을 연주하는 그림이 있고, 각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처음 나타난다.


○ 역사적 변천고구려 고분벽화에 각이 그려져 있고, 『삼국사기』 권8 효소왕 조에 각에 대한 기록이 있고, 권32의 백제악에 각이 포함되어 있어, 각은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취각군(吹角軍)이 의위와 노부에 진설되었다. 조선전기에는 각을 용도에 따라 대각, 중각, 소각으로 구분하여 사용했고, 형명, 노부, 의장, 정재에서 사용했다. 조선 후기에는 취각령과 취각은 없어진 반면 취고수(吹鼓手)에 각이 편성되었다. 『만기요람』(1801)에는 재료에 따라 구리로 만든 동대각과 나무로 만든 목대각으로 구분했다. 1895년 군영이 해체된 이후, 동대각은 형태와 기능이 유사한 나발로 흡수되어 전승이 끊겼다. 반면 목대각은 ‘고동’ 등의 이름으로 민간에 전해져 일부 지역의 농악에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각'은 고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군영의 신호·통신 체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악기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비록 궁중 음악의 향악기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국가의 가장 중요한 조직인 군대와 의례에서 꾸준히 사용되었으며 그 명맥을 이어왔다. 현재도 고동 등의 이름으로 민간에 전승되어 농악 등에서 사용되는 것은 고대 악기가 소멸하지 않고 민중의 삶 속에 녹아들어 생명력을 이어온 의미 있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세종실록(世宗實錄)』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
『악학궤범(樂學軌範)』
『진찬의궤(進饌儀軌)』
이숙희, 『조선 후기 군영악대: 취고수ㆍ세악수ㆍ내취』, 태학사, 2007.
오지혜(吳䝷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