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정건은 『고려사(高麗史)』에 우왕(禑王, 1365~1389)이 원(元)의 복식제도를 폐지하고 명(明)의 것을 따르도록 하면서 성균관 유생, 사인이 평정두건을 착용하도록 하였다. 형태는 두상 부분이 각진 형태와 각지지 않는 형태가 있었다. 용도는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녹사는 유각평정건(有角平頂巾), 서리는 무각평정건(無角平頂巾)을 착용한다고 하였다. 영조(英祖, 1694~1776)대 이후 서리의 평정건만 남았다. 색상은 흑색이었고 착장법은 끝이 없이 쓰는 형태였다. ○ 유건유건은 치포건(緇布巾)이라고도 한다. 『추계선생실기(楸溪先生實記)』에는 조선초기 유건의 제도가 없어 폐단이 많았는데 편리하게 만들었다는 설명과 「유건도(儒巾圖)」가 제시되어 있다. 형태는 자루 모양에 양쪽에 귀가 있다. 용도는 유생들이 평상상에 썼고 소과(小科)에 입격하여 치루는 방방의(放榜儀)의 쓰개이다. 재질은 사(紗), 주(紬) 등 견직물로 만들었다. 색상은 청색 혹은 흑색이었다. 제작방법은 양옆을 깊숙하게 접은 후 위쪽의 솔기 부분을 뒤로 눕혀 귀를 자연스럽게 잡아 뺀다. 착장법은 장방형이 앞뒤에 놓이고 양쪽 귀가 옆에 가도록 하여 쓴다.○ 복건복건의 형태는 둥글면서 삐죽 솟은 모양이고, 넓고 긴 드림을 뒤로 늘어뜨린다. 용도는 유학자들이 심의(深衣), 학창의(鶴氅衣)와 함께 착용하였고, 유생 및 미혼 남자들의 통상예복, 돌날 남자아이의 쓰개로 썼다. 재질은 사, 주 등 견직물로 만들었고 색상은 흑색이다. 제작방법은 겹과 홑으로 만들었고 두상 부분을 봉긋하게 재단하고 바느질 하였다. 뒤로 길게 장방형 천을 재단하였으며 양쪽에 끈을 달았다. 착장법은 두상에 솟은 부위를 머리에 눌러 쓰고 양 끈을 뒤로 돌려 잡아 맨다. ○ 방건방건은 각이 진 형태의 두건이라는 뜻으로 형태는 네 면을 옆으로 이은 사각모양이다. 형태를 본 따 사방관(四方冠)이라고도 한다. 용도는 실내에서 착용하는 간편한 관모이다. 재질은 말총이며 색상은 흑색이다. 제작방법은 말총으로 엮어 만든다. 착장법은 사각형이 이마 위에 놓이게 쓴다. ○ 탕건탕건의 형태는 상투와 두상의 외관을 따라 앞이 낮고 뒤쪽이 높은 2단 구성이다. 용도는 사대부가 관을 쓰기 전에 밑받침 쓰개로 착용하였다. 재질은 말총으로 만들고 색상은 흑색이다. 제작방법은 말총을 섬세하게 엮어 만든다. 착장법은 망건 위에 맨상투를 덮을 수 있도록 낮은 단을 앞쪽으로 하여 쓴다. ○ 망건망건의 형태는 이마와 두상을 두르는 긴 띠 형태이다. 용도는 성인 남자가 상투를 틀 때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위로 걷어 올리기 위해 이마와 두상에 두른 건이다. 갓[黑笠], 관모, 각종 쓰개를 쓸 때 밑받침으로 착용하였다. 재질은 말총으로 만들고 색상은 흑색이다. 제작방법은 이마 부분은 성글게 짜서 이마가 비치게 하고 두상을 두르는 부분은 촘촘히 짜여진다. 착장방법은 망건 끝 부분에 달린 끈, 즉 망건당줄을 뒤에서 교차하고 망건 양쪽에 단 관자(貫子)에 걸어 고정한다.조선시대에 궁중 음악을 연주한 악공, 관현맹인(管絃盲人), 가동(歌童), 가자(歌者)도 두건을 착용했으며, 색깔이 서로 달랐다. 악공과 관현맹인은 녹주(綠紬) 두건을 착용했고, 가동과 가자는 자주색(紫紬, 紫的) 두건을 착용했다. ○ 녹주두건(綠紬頭巾)조선전기 동궁이 사신에게 베푸는 잔치[使臣東宮宴], 예조에서 왜인과 야인에게 베푸는 잔치[禮曹倭野人宴], 사악(賜樂)의 음악을 연주하는 악공은 토홍단령(土紅團領)을 입고 녹주두건을 착용했다. 개성부천사영명(開城府天使迎命)의 연향에서는 악공이 흑단령을 입고 녹주두건을 착용했다. 대비전 진풍정과 중궁예연에서 관현맹인은 압두록금단령(鴨頭綠木綿團領)을 입고 녹주두건을 착용했다. 녹주를 꿰어서 만들고, 안에는 생포(生布)를 써서 만들었다.○ 자주두건(紫紬頭巾)자주두건은 가동의 예복에 사용되었다. 모화관친열(慕華館親閱)에서 연주할 때 가동은 자주두건을 쓰고, 녹주단령(綠紬團領)을 입고, 대홍진사(大紅眞絲)의 광다회(廣多會)를 띠고, 오피화(烏皮靴)를 신었다. 자주를 꿰어서 만들고, 안에는 생포(生布)를 썼다.○ 자적두건(紫的頭巾)자적두건은 조선후기 궁중의 연향에서 가자가 착용했다. 가자는 자적두건을 쓰고, 녹단령, 자적광대(紫的廣帶), 흑화를 착용했다. 자적두건의 상부는 오각형으로 제작되었다. ○ 역사적 변천『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단군(檀君)이 사람들에게 머리카락을 땋고 머리를 덮는 방법을 가르쳤으며, 위만(衛滿)은 상투를 하고 동이족(東夷族) 복식을 입었다고 하였다. 단군이 가르쳤던 머리를 덮는 것은 쓰개 착용법을 말하고, 위만이 상투를 하였다는 것은 중국과 다른 머리모양을 하였음을 뜻한다. 간편한 쓰개인 건의 유구한 연원을 살필 수 있는 대목이다. 쓰개와 머리모양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상투 위에 쓴 한민족의 건은 고유한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경국대전』
『고려사』
『악학궤범』
『(신축)진연의궤』
『구당서』
『선화봉사고려도경』
『악학궤범』
『증보문헌비고』
『추계선생실기』
尹孝孫, 楸溪先生實記 圖式, 5후, http://www.nl.go.kr/nl/
김은정ㆍ임린, 『한국 전통복식문화의 이해』,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2021.
진덕순, 「조선 유생의 문과 급제와 복식문화 연구」, 안동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9.
임린(任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