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는 〈양반 과장〉으로 종가(宗家)양반ㆍ모(毛)양반ㆍ애기양반과 말뚝이가 등장해서 본분을 지키지 않는 양반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종가양반이 말뚝이를 부르자고 하며 말뚝이를 몇 차례 불러내면 느지막이 말뚝이가 나타난다. 양반들이 과거 시험을 언급하며 함부로 쏘다니는 말뚝이를 나무라지만, 오히려 말뚝이는 양반을 희롱하는 말로 야유한다. 말뚝이의 고발에 양반들은 “망했네. 망했네. 양반의 집이 망했네.”라고 하면서 퇴장한다. 네 번째 〈영노 과장〉은 영노가 양반을 잡아먹겠다고 하는 내용으로 양반에 대한 풍자가 더욱 거세진다. 영노가 “비∼비∼” 소리를 내면서 등장하여 대국에서 양반 아흔아홉 명 잡아먹고 조선 양반을 잡아먹으려고 왔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양반이 자기는 양반이 아니라며 ‘개, 똥, 오줌, 소, 돼지, 갈치, 멸치’ 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한다. 양반의 체면을 나타내는 부채를 떨어트리는 등 온갖 망신을 당하다가 부채를 간신히 집어 들고 춤추며 퇴장한다. 다섯 번째 〈할미ㆍ영감 과장〉은 잘 알려진 할미 마당의 내용으로, 영감이 죽는 결말로 이루어진다. 큰이(본처, 할미)와 영감은 서로 헤어져서 조선 팔도를 다니면서 찾다가 만나게 된다. 둘은 만나서 안부를 묻고, 영감이 제물포에서 작은이(첩)를 얻었다고 전한다. 할미가 작은이를 보자고 하자 영감은 작은이를 불러들여서 논다. 할미는 질투를 하고, 영감은 두 아들의 행방을 할미에게 물으니 모두 죽었다고 한다. 자식 둘이 죽었다는 소식에 기가 막힌 영감이 졸도하고, 작은이는 나가버린다. 놀란 할미가 영감을 살리기 위해 의원을 부르고, 봉사를 불러 독경도 하고, 무당을 불러 굿도 해보지만 결국 살려내지 못한다. 상두꾼이 죽은 영감을 메고 나가면서 〈상여소리〉를 부르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여섯 번째 〈사자무 과장〉은 담비라는 동물이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과정으로 되어 있다. 담비는 춤을 추며 등장하며, 이어서 나타나는 사자의 비위를 건드린다. 사자와 담비의 실랑이가 이어지다가 사자가 담비를 잡아먹는 것으로 마친다.
○ 악·가·무 특징 무대 가장자리에 악사들을 배치하여 공연하는 무대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한다. 김해오광대는 주로 태평소, 꽹과리, 징, 북, 장구로 구성된 풍물패가 반주를 담당한다. 춤 반주에 주로 사용하는 덧배기가락은 김해에서 쇠가락이라고 부르며, 주로 〈풍물놀이〉에 쓰이는 장단이다. 덧배기는 경상도 지역의 전통적인 가락으로 3소박 4박자 장단이며, 제3박의 3소박을 강조하는 리듬형태로 되어있다. 김해오광대만의 덧배기가락은 정용근 등 연희자들의 노력으로 채보되어 전승에 도움을 주고 있다. 김해오광대에서는 춤이 주가 되지만 경우에 따라 노래가 가창되기도 한다. 〈중과장〉에서는 〈중타령〉이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상좌나 노장이 부르지 않고 놀이꾼 중에서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무대 가에 나와서 중들이 춤을 출 때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김해오광대는 춤이 주가 되는 형태의 연희이다. 장단은 대체로 춤을 추는 장면에서 덧배기장단을 많이 사용하고, 그 밖에 타령장단과 세마치장단도 사용한다. 김해오광대에 사용되는 악곡은 많지 않은데, 〈중과장〉의 〈중타령〉, 〈할미ㆍ영감 과장〉의 〈사랑타령〉ㆍ〈밀양아리랑〉ㆍ〈독경〉ㆍ〈곡소리〉ㆍ〈상여소리〉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삽입가요들은 본래 악곡의 전형적인 형식과 특징을 반영하여 가창된다. ○ 복식·의물·무구 등장인물은 종가양반ㆍ터럭양반ㆍ애기양반(일명 도령)ㆍ말뚝이ㆍ포졸ㆍ어딩이(무시르미의 아버지)ㆍ영감ㆍ할미ㆍ작은이ㆍ마을사람ㆍ아기·봉사ㆍ의원ㆍ영노(비비새)ㆍ비비양반ㆍ중ㆍ상좌ㆍ사자와 노름꾼 세 사람, 상도꾼 네 사람으로 모두 28명이다. 이 중 상도꾼ㆍ봉사ㆍ아기는 탈을 쓰지 않고 나온다. 탈은 대체로 실제 인물의 형태로 만들어지는데, 영노 가면만이 추상적인 형상으로 되어있다. 사용되는 탈로는 노장중, 상좌중, 노름꾼 1, 노름꾼 2, 노름꾼 3, 노름꾼 4, 주색탈, 어딩이, 포졸, 종가양반, 모양반, 애기양반, 말뚝이, 상주선산양반, 영노, 영감, 큰이, 작은이, 사자, 담비 등의 스무 개가 있으며, 영감ㆍ비비양반은 종가양반의 탈을 함께 사용한다. 과거 탈의 재료로 나무를 사용한 적도 있었으나, 현재는 주로 바가지로 만든다. 다만, 사자탈과 담비탈은 대소쿠리로 만든다. 탈의 색상은 적색. 흑색, 백색이 주종을 이룬다. 현재 김해오광대 연행에서 쓰는 탈은 옛 연행자 또는 연행을 본 적 있는 사람들의 고증과 송석하가 수집한 열두 점을 기반으로 제작한 것이다. ○ 역사적 변천 과정 송석하가 1930년대에 기록한 자료에 따르면 김해오광대는 1890년대에 《동래야류》를 참고해서 시작하였다고 한다. 김해오광대는 김해 가락면 죽림리(竹林里)에 전승되던 것으로, 죽림마을은 포구로 수운이 발달된 지역이어서 이 점이 탈놀이 발달과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37년 중일전쟁 이전까지 마을주민들에 의해서 오광대놀이가 연행되었으나, 이후 마을이 쇠퇴하고 그 연기와 춤 등을 계승하는 이가 없어 전승이 중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 말 이후 중단된 탈놀이는 현재 여러 연희자와 연구자들에 의해 복원되어서 연행하고 있다. 본래 《김해가락오광대》로도 불렸는데, 1984년 전 김해문화원장인 류필현의 주도로 복원하면서 ‘《김해탈놀이》’로 부르게 되었다. 최상수가 채록한 대본을 바탕으로 복원되어 2015년에 경상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하게 되었다. 현재 죽림리는 1989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에 편입되면서 부산지역에 속하게 되었으나 김해오광대는 경남의 무형유산으로 남아 있다. 김해오광대의 연희자들은 대부분 농민들이며, 놀기 좋아하고 춤에 재능이 있는 인물이었다. 현재는 예능보유자 이명식(李明植), 정용근(鄭龍根), 이수자 천승호를 비롯하여 20명, 그리고 전수생 등 35명이 활동하고 있다.
김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