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와 구성] 퇴계원산대놀이는 12과장으로 구성되며 놀이에 앞서 길놀이와 서막고사를 지낸다. 과장 구성은 첫째 과장: 〈상좌춤〉, 둘째 과장: 〈옴중과 상좌〉, 셋째 과장: 〈옴중과 먹중〉, 넷째 과장: 〈연잎과 눈끔적이〉, 다섯째 과장: 〈애사당 북놀이〉, 여섯째 과장: 〈팔먹중 놀이〉, 일곱째 과장: 〈노장춤〉, 여덟째 과장: 〈신장수 놀이〉, 아홉째 과장: 〈취발이 놀이〉, 열 번째 과장: 〈의막사령놀이(청직이 놀이)〉, 열한번째 과장: 〈포도부장 놀이〉, 열두번째 과장: 〈신할아비와 미얄할미〉로 구성되어 있다. 양주별산대놀이나 송파산대놀이와 과장 구성을 비교해볼 때 명칭만 다를 뿐 구성 순서는 같다. [악·가·무 특징] 퇴계원산대놀이에서 사용되는 반주악기는 피리 두 대ㆍ대금ㆍ해금ㆍ장구ㆍ북으로 구성된 삼현육각에 꽹과리, 태평소가 추가된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피리, 장구만으로 반주되기도 한다. 반주장단은 〈염불타령〉, 〈중허튼타령〉, 〈자진허튼타령〉, 〈느린굿거리〉, 〈자진굿거리〉, 〈능게〉 등이 있다. 노래로는 〈청춘가〉, 〈창부타령〉, 〈백구타령〉, 〈둥둥타령〉, 만신의 덕담과 〈노랫가락〉 등이 나오며 경기민요에 바탕을 둔 선소리 계통의 소리가 주를 이룬다. 퇴계원산대놀이의 기본 춤사위에는 불림, 경사위, 고개잡이, 너울잡이, 제자리깨끼, 엇새기깨끼, 곧은치기깨끼, 멍석말이, 어깨치기, 여닫이, 목잡이, 양발치기깨끼리, 곱사위, 팔뚝잡이, 막사위 등이 있으며, 이 또한 40여 종의 거드름춤과 깨끼춤으로 세분화된다. [복식·의물·무구] 퇴계원산대놀이의 복식과 의물은 양주별산대놀이의 복식이나 의물과 유사성이 많다. 최상수(崔常壽, 1918~1995)에 의하면 퇴계원산대놀이는 《구파발산대놀이》와 《양주별산대놀이》에서 배워서 온 것이라고 전파경로를 밝힌 바 있지만 두 지역의 연희자들은 과거부터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계원산대놀이에 사용되는 탈은 바가지탈이 아닌 나무탈이다. 나무를 깎고 그 위에 색을 칠한다. 옴중ㆍ먹중ㆍ연잎ㆍ눈끔적이ㆍ취발이ㆍ샌님 등 주요 등장인물은 코가 크고 입이 타원형으로 길게 벌어졌으며 전반적으로 선이 둥글다. 이 외의 탈은 사실성이 강조됐으며 대체로 고운 선을 갖고 있다. 상좌 2종, 옴중, 연잎, 눈끔적이, 완보, 원먹중, 먹중 4종, 왜장녀, 애사당, 노장, 큰소무, 작은소무, 말뚝이, 원숭이, 취발이, 샌님, 포도부장, 신할아비, 미얄할미 등 총 23개의 탈을 사용한다. [역사적 변천 및 전승] 1990년대 중반 퇴계원산대놀이의 복원을 위한 조사가 진행됐는데, 과거의 연행을 기억하고 있는 백황봉(白黃鳳, 1911~2006)과 최사윤(1912~?)을 통해 퇴계원산대놀이의 역대 연희자, 가면, 놀이내용 등이 학계에 알려졌다. 백황봉의 증언에 따르면, 퇴계원산대놀이는 약 200년 전부터 연희되었다. 예로부터 ‘원(院)’이라는 지명이 붙는 곳은 교통의 중심지로, 한양으로 들어가는 주요 교통로에 해당한다. 조선시대 양주에 속해 있던 퇴계원은 강원도와 함경도의 행인들이 한양의 동대문으로 들어가기 위한 직통로였다. 교통의 요지였던 퇴계원에는 한양에 공급되는 연초, 숯, 장작, 건축자재, 소, 곡식, 채소 등 소비재가 집하됐으며, 100여 호의 객주집과 역원(驛院)이 왕숙천을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상업의 발달로 많은 사람들이 왕래했던 퇴계원에는 산대놀이가 연행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갖춰져 있었다. 1920년 조선총독부가 민간의 연초(煙草; 담배) 상업을 금지하자 퇴계원 지역의 경제는 급격히 쇠퇴했으며 퇴계원산대놀이의 전승도 타격을 입게 되었다. 1945년 추석에 퇴계원산대놀이가 잠시 재개됐는데 연희자들이 대부분 작고하여 《양주별산대놀이》의 연희자들을 초청하여 함께 연행했다. 이 무렵 채록된 연희대본으로 「퇴계원산대놀이보존회본」이 있으며, 산대놀이 가면극의 주요 내용인 벽사(辟邪) 의식무, 양반과장, 파계승과장, 영감ㆍ할미과장을 공유하고 있다. 퇴계원산대놀이의 대표적인 연희자는 한원근(韓元根, 1870~1933)으로 기량이 가장 뛰어나 탈 제작과 취발이ㆍ옴중ㆍ관 쓴 중역을 맡았다. 한원근은 《양주별산대놀이》에서 산대놀이를 배워 왔는데, 나중에는 《양주별산대놀이》에서 다시 그에게 배워 갈 정도였다고 한다. 민홍운(閔弘云, 1876~1939)은 눈끔적이ㆍ신할아비ㆍ말뚝이, 조홍기(1881~1941)는 먹중, 한용삼(韓龍三, 1873~1955)은 포도부장ㆍ말뚝이, 임명운(林明雲, 1870~1943)은 노장, 서순집(徐順集, 1868~1933)은 먹중ㆍ옴중, 한만세(韓萬世, 1888-?)는 애사당, 윤원산(尹元山)은 왜장녀와 소무, 최은동(崔銀同, 1890~1965)은 소무, 서만봉은 왜장녀ㆍ옴중역을 맡았다. 이들 연희자는 주로 연초 가공업에 종사하면서 상인과 부호들의 지원을 받아 가면을 만들고 놀이판을 열어 산대놀이를 연행했다. 퇴계원산대놀이는 2010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됐으며, 2022년 ‘한국의 탈춤’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병옥(李炳玉)